[경일포럼]주요한의 한글 강연
[경일포럼]주요한의 한글 강연
  • 경남일보
  • 승인 2024.10.0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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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의 일이다. 1974년 시월 상순에 부산 테레사여고 강당에서 한글날 기념 강연이 있었다. 서울에서 이어령 등 다섯 명의 명사들이 내려 왔다. 그 시절만 해도 지방에서 명사들의 육성 강연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인지, 이 특별한 행사는 청중의 좌석을 가득 채웠다. 강연자 중에는 주요한이 끼여 있었다. 그때의 나이는 이른 넷. 나는 하루 전 날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1919)를 쓴 역사의 인물을 보러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랬고 기쁨이 넘쳤다. 그때 내 나이는 열일곱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한 10년 전 즈음이었던가? 1974년 주요한의 강연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무척 답답해한 적이 있었다. 지역신문 자료실에 가볼까 하고 생각도 했다. 가본들 내용이 자세하지 않을 게 번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오페라 심청전 자료 때문에 내가 소장하고 있는 ‘문학사상’ 창간호(1972. 1)를 뒤적일 때, 주요한의 짧은 에세이 ‘문간에서 돌아 나온 변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쪽짜리 이 산문을 읽어보니 그때의 강연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섬광처럼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산문이 내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자신이 문학 활동을 한 과거의 객관적 사실과, 우리 한글 문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당위성 및 비전에 관해 주로 얘기했다. 그는 도쿄에서 조기유학을 했다. 10대 후반에, 그는 일본 ‘구어(口語)자유시’의 선구자로 유명한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의 집을 드나들면서 시 창작을 배우고 익힌 덕에 일본어로 된 자유시를 썼다. 국내의 잡지인 ‘청춘’에는 한글로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단다. 훗날에 그는 후회했다. 일본어와 한글이라는, 또 시와 소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쳤다고. 3·1운동 직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상해로 망명했다. 한동안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일제 말에 친일의 오점을 남겼다. ‘창조’ 동인들 중에서 김동인이 가장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남겼지만, 주요한은 비교적 복된 인생을 살았다. 국회의원, 장관, 공사 사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다가 그 당시로는 천수를 누렸다. 앞서 말한 산문의 막바지 글을 참고로 그의 어록을 복원해본다. 물론 가상의 어록이다. 실상의 육성과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실상의 요지는 접근한다고 봐도 괜찮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어조는 느릿느릿했다.

지금 생각하면, 1970년대 초에, 미래의 우리 문학을 청각적인 감수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상당히 시대를 꿰뚫어본 것. “나는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만을 받았어요. 하지만 나는 문학적으로, 처음부터 일부러 한글문학을 지향했어요. 기독교 집안이라서 어릴 때부터 한글 성경을 읽었고, 자라면서 신소설, 개화기소설을 재미삼아 적잖이 읽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물론 한자, 한문의 매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뜻글자의 미를 추구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국민문학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유럽 근대문학의 클래식들을 보세요. 이것들이 라틴어를 벗어나 자국어를 발견한 선배들의 전통에서 꽃을 피우지 않았어요? 한국어의 미는 두루 알다시피 소리글자의 아름다움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표준어, 문어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터나 광장을 더욱 넓히는 데 기여한다면, 방언, 구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마음의 화원 속에 풍성하고도 화사한 꽃들을 피운다. 그때는 ‘불놀이’를 발표한 55년 전이 까마득한 과거로 느껴졌는데, 그때로부터 50년을 지나고 보니 시간의 속도가 참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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