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5>

2012-03-29     이해선
여주댁은 사방으로 눈을 튀긴 후 양손으로 완강하게 거머잡고 있던 대문의 입을 조금 더 벌렸다.

 대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간 민숙은 뒤뜰로 괭이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진석의 방은 안채와 마주 보이는 아래채에 있었다. 전쟁에서 지고 있던 왜놈들이 이 땅의 처녀총각들을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을 쓰는 바람에 순사가 들이닥칠 때 마다 뒷산으로 달아나기 좋은 뒤채로 방을 옮겼다.

 막 뒷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던 민숙은 대문 흔드는 소리와 함께,

 “여주댁 안에 있어요?”라고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예, 예.” 민숙의 고양이걸음을 눈감아 주고 있던 여주댁은 제바람에 흠칫 놀라며 선 자리에서 오른쪽에 있는 대문께로 다시 향했다.

 “민숙이 년 여기 와 있죠?”

 문빗장이 다 풀리기도 전에 화성댁은 안에다 대고 따지듯 물었다. 단걸음에 지름길로 달려오긴 했지만 밭에서 집으로 그리고 여기까지 오고하는 사이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순사에게 금방이라도 덜미가 잡히고 말 것만 같아서였다.

 “그, 그래요.”

 쫓기고 있는 것 같은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순사가 동네에 나타났음을 직감한 여주댁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뒷마당 쪽으로 목을 돌려,  “민숙아, 오빠하고 빨리 피해. 얼른!”숫제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대문을 손바닥 하나 들어갈 만큼만 열었다.

 “이년아, 얼른 피하라니까?”

 화성댁은 얼굴을 먼저 대문 안으로 들이밀며 덩달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개미새끼 기어가는 소리도 감지할 만큼 예민해져 있는 속귀로 분명 들었다. 자전거 바퀴가 등 뒤로 바짝 다가오고 있음을.

 ‘애들이 아직 담을 넘지 못했을 텐데??.’ 얼굴색이 노랗게 질린 화성댁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선 자리에서 동동거렸다.

민숙이와 진석은 뒷담을 잽싸게 넘기는 했다.

 “오빠, 빨리 달아나. 어서 빨리!”

 담을 넘다 발목을 삔 민숙은 소리를 죽여 울먹였다.

 “빨리 업히라니까.”

 진석은 민숙이 코앞에 등을 들이대고 있었다.

 “얼른 가 보세욧.”

 여주댁은 화성댁은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았다. 쌓인 감정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진석이와 민숙일 잡아가기 위해 툭하면 눈알을 부라리곤 하는 순사한테 처녀총각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두 손 번쩍 들고 말해 주는 격이 될 수 있어서였다.

 “돌아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화성댁은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입술로 너무 가여운 모깃소리만한 목소릴 냈다.

 “예엣?”

 그제야 대문 밖의 사태를 짐작한 여주댁의 얼굴도 노랗게 질렸다. ‘절대로 안 돼!’방정맞게도 진석과 민숙이가 순사한테 끌려가는 장면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