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63>

2012-04-02     경남일보
 “아무래도 신랑각시가 신행을 함께 할 순 없겠습니다.”

 정자 숙부는 새신랑한테 사람을 보내 학동으로 바로 오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고 덧붙였다.

 “이 할미가 위독하다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올 것입니다.”

 노파는 자신 있게 맞장구를 쳤다.

 정자 숙부를 배웅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간 노파는 그 길로 민숙의 집을 향하여 성난 팔을 흔들었다.     

 ‘이 배알도 없는 썩을 놈이 저 싫다는 년하고 콕 박혀 있으면 어쩌누?’

 손자가 민숙의 손을 강제로 이끌고 어디론가 도망을 친 것이 아닌가 싶어 더 졸일 것도 없는 속이 자글자글 졸아붙고 있었다. 

 ‘이 요절을 낼 년, 내 새끼 신세를 망치려고 들어도 유분수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무조건 민숙이가 철천지원수처럼 여겨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년아, 만세는 너 혼자 다 부르고 다녔니?” 

 화성댁은 습관처럼 딸의 방문을 흘겼다.

 체념어린 얼굴로 집을 나서다간 팔을 힘껏 휘저으며 오고 있는 형식의 할머니를 보곤 흠칫 놀라며 무심결에 뒷걸음을 쳤다.

 ‘아니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어쩌자고 품지 말아야 할 희망이 또 꿈틀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설마!’

 목을 짧게 가로흔들었다. 어제 새신랑이 민숙이 년과 헤어진 후 각시한테 돌아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화성댁!”

 노파는 북어껍질 벗기는 소리를 내며 민숙 어머니를 불렀다.

 “아, 예.”

 죄지은 사람 마냥 제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이녁을 그렇게 안 봤는데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숨이 가쁜지 노파는 길게 숨을 내뿜었다가 깊이 들이쉬곤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충분히 짐작이 가면서도 화성댁은 뜨악한 얼굴로 그렇게 반문했다.

 “민숙이 그 아이 지금 집에 없지요?”

 노파는 단도직입적으로 넘겨짚기를 했다.

 “늦잠에 빠져 있는 년을 집에 없다니요?”

 여유 있게 반문했다. 

 “뭐? 안 돼!”

 노파는 입언저리를 부르르 떨며 민숙의 방 앞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생각이 지랄개떡 같이 돌아가도 정도가 있지 신방을 뛰쳐나온 손자 놈이 민숙이와 나란히 누워 있는 상상을 다 하느냐 말이다. 그리고선 전혀 가당치않은 상상이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이리 오셔서 확인해 보세요.”

 민숙이 방으로 노파를 앞질러 화성댁은 딸의 방문을 열어보였다. 

 “내가 못할 줄 알고…….”

 노파는 망설이지 않고 민숙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새신랑이 어디 갔기에 여기 와서 찾는지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노파를 보며 내심 쾌재를 부르며 여유 있게 물었다.

 “늙으면 죽어야지. 무슨 의심이 이렇게 많은지. 경성에 급히 다녀온다고 했는데 혹시나 옆길로 샜나 하고 와 본 거요.”

 노파는 금방 노글노글해진 목소리로 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