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69> 5 길이 없는 만남

2012-04-09     이해선

 타고난 운명은 거슬릴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럽게 타고난 팔자를 한번 고쳐보겠다고 죽을힘 살 힘 동원해 가며 발버둥을 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 누구도 하늘이 맺어준 사람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또 경성으로 달아나 버린 것일까?’

 이른 새벽부터 정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말 살맛이 모기 눈물만큼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간밤에 늦게나마 신랑이 신방을 찾아주었을 때 그녀는 남몰래 설레는 가슴을 누르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새아가, 신랑 마음을 딱 붙들어 매는 방법은 그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쑥 뽑아 놓는 것뿐이다. 암, 그렇고말고…….’

 정자가 시집으로 오던 바로 어제 형식의 할머니는 손자며느리의 귀에다 이 말을 솔솔 불어넣었다.

 ‘떡두꺼비를 무슨 수로 혼자서 만든단 말씀입니까?’

 정자는 밤새 되뇌던 말을 또 되씹었다. 그녀 몸에 손끝하나 대지 않고 너무도 무심하게 또 혼자 잠들어버리는 신랑은 숫제 그림의 떡이었다. 새벽에 유령처럼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더니 새우등을 하고 자는 체하는 이쪽에겐 눈길 동냥을 힐긋 긋곤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먼저 말이라도 붙여볼 걸.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볼 걸.’ 뒤늦게야 후회했다.  

 “새아가, 자는 사람은 내버려두고 할미와 아침 한술 뜨자구나.”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손자며느리를 깨웠다. 끼니때가 되어도 손자내외 방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없자 달그락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밥상을 다 봐놓은 것이었다.   

 “아, 예 할머니.”

 비로소 창호지문이 훤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정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에서 나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준비를 하라고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시켰는데도 그만 깜박하고 말았다.   

 “딴에는 경성으로 왔다 갔다 하느라고 곤할 것이다. 푹 자도록 놔두고 우리 먼저 먹자.”

 큰 실수라도 한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모르는 정자의 얼굴을 노파는 자꾸만 힐긋거렸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낼부터는 일찍 일어나겠습니다.”

정자는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가 밥상을 들고 나왔다.

 “새아가, 너도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노파는 눈꺼풀을 좀 들어 올리며 새아기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얼굴색이 왜 저 모양인고?’

 노파는 손자부부의 방을 곁눈질했다. 이팔청춘이면 양 볼에 복사꽃이 활짝 피어야 할 나이가 아니던가? 영 우중충하고 어두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마음에 가시처럼 딱 걸렸다.

 “아니에요. 할머니, 괜찮습니다.”

 정자는 숟갈을 집어 들어 할머니 손에 쥐여드렸다.

“새아가, 새신랑은 식성이 좋아서 가리는 음식이 없단다.”

 농담을 가장한 짓궂은 진담으로 ‘간밤에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잤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노파는 또 슬슬 눈치만 살폈다.

 “예,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