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2012-04-17 경남일보
▶나들이엔 길동무와 화제가 될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피아골 연곡사를 찾아 나선다. 섬진강 둔덕에 배꽃 송이가 흐드러졌다. 달이 뜨면 두견새가 울리라 이화는 월백하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돌계단을 오르니 일주문에 주련을 달아 놓았다. 오른쪽부터 ‘역천겁이불고/항만세이장금(歷千劫而不古/恒萬歲以長今)’이다. ‘천겁이 흘러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를 뻗쳤어도 언제나 지금’이란 말인 듯한데, 해인사 일주문에도 붙어 있는 이 글귀는 조선조 초 함허(函虛) 선사의 명구로 왼쪽 연의 첫 글자 항(恒)은 원래 긍(亘)이 있던 자리다.
▶대적광전을 왼편으로 돌아올라 세상에 보기 드문 부도(浮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국보 53호 동부도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부도는 천년세월에도 조금도 닳지 않고 마치 방금 석장에서 옮겨다 놓은 것처럼 생기가 넘친다. 인간의 손으로 그 야문 돌을 어쩌면 저토록 아름답게 쪼았는지 경탄이 절로 난다. 연곡사에는 이밖에도 국보 54호로 지정된 서부도 탑이 하나 더 있고 보물이 셋이나 있다.
▶차고 시린 영하의 긴긴밤과 무덥고 찐 여름나절을 번갈아 이겨낸 불고장금(不古長今)의 부도탑은 지금 막 막춘(莫春)의 신록을 맞이하고 있는데 가는 세월을 원망한 이 그 누구던가?
박동선·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