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그 후

김은하 (전 진주시의회의장)

2012-04-26     김순철

이번 4·11일 총선에서 정치계의 리더는 물론 47명의 여풍은 우뚝 서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교육계에도 여선생들이 크게 앞선지 오래되었고 금단의 분야에서도 전문직 등 여성들이 곳곳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등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기능과 인내력, 섬세함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강하고 우수한 DNA을 가졌지 않았나 생각된다.

1800년대 말께 미국 인력개발위원장 엘리길스버그 박사는 “여성의 직장진출은 원자탄 발명보다 중요한 금세기 최대의 혁명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직장진출이 어려웠던 수백 년 전의 이야기다.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이젠 일상적인 세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 거센 여성의 시대를 살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 한 지붕 밑에 2대, 3대가 살았던 시절, 생명은 제각각 먹고 살 복을 갖고 태어난다는 다출산 믿음 속에 많은 형제들이 자라면서 할아버지의 살아온 값진 경험과 귀중한 체험들이 손자들의 삶을 가르쳤고,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의 정이 약손이 되어 어려운 환경 속에 불만·불평 없이 자랐다.

가족계획이란 정책 이후 세상은 바뀌었지만 인구의 증가율은 낮아진다. 인구가 증가하지 않으면 경쟁력도 같이 낮아진다. 소수의 저출산은 왕자·공주처럼 과잉보호하는 육아법이 외국과 달리 자립성을 부족하게 하지 않을지(?). 자식농사 잘 짓겠다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맞벌이 생활 속에 출산부터 인생고민을 시작하는 애태움의 연속 속에 힘이 든다 싶으면 자식도 버리는 세상이다. 버려진 아이들은 기름지고 배부름보다 정에 굶주려 비행청소년으로 빠지기 쉽다. 학교폭력 문제가 뉴스를 타고 동영상으로 방영됐다. 성장기의 또래의 모임 속에 조그마한 마찰이야 있을 수 있지만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괴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혼자서 고민하고 가슴앓이 하다가 가슴이 멍 들고 결국 극단의 길을 택하여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지는 것을 보면 정말로 슬픈 충격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부모들은 언제나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의 실수라면 하고 넓은 마음과 이해하는 쪽에서 생각한 것처럼 부드럽고 배려적이고 화해와 소통의 특성을 가진 우리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한 보살핌이 되지 않을까. 정과 사랑으로 새싹부터 잘 키워 튼튼한 줄기를 만든다면 훌륭한 열매를 맺는 것 아닐까. 나아서 기쁘고 키우면서 행복하고 자라면서 즐거운, 그런 가족의 세포가 모여 핵을 이루고 나라를 만드는 것 아닌가.

인류는 먼 선사시대부터 모성본능으로 사회발전을 이뤘다. 여성의 노력으로 세상이 좋아진다는 자각이 없지 않겠지만 여성의 자리에서 가정을, 나라를 키우고 윤택하게 하는 역풍이 불었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