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2012-05-15     경남일보
아침 일찍 현관문을 여는데 돌계단에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어 매듭을 열어보니 갓 캔 상추가 한줌 들어 있다. 아내와 마주 앉아 싱싱한 상추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웃이 베푼 양심에 고마워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일년 내내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이른 봄 서리 내린 새벽에는 아직도 연붉은색이 묻어 있는 머위 싹이 있었고, 어느 날은 쪽파가 한 보시기 있었으며 해가 길어지면서 산나물, 마늘, 부추, 고구마, 무, 배추, 감, 대추 등으로 해를 넘겨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노파는 유모차에 고구마 순을 묶어 나른다. 공장 허드렛일을 거드는 아주머니는 퇴근 후 어둠을 뚫고 거둔 마늘 순을 뒷날 아침 출근길에 갖다 놓는다. 이처럼 선한 이웃을 두기까지는 텃밭에 가꾼 배가 씨앗이었다. 묘목 30그루를 사다 심어 거름을 주고, 봉지를 씌우고, 약을 뿌려 거둔 배가 뜻밖에도 조생종이었다. 9월 초순 노랗게 영근 배를 따다가 한줌씩 이웃에 나눠주었다. 이것이 해를 잇자 우리 내외를 이웃으로 동참시켜 준 것이다.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날’이다. 가정의 날에 가정이 없는 것이 오늘의 사정이다. 어버이날이라고 잠시 모였던 가족들이 훌쩍 떠나버린 산촌의 집은 휑뎅그렁하기 그지없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멀리 두고 늙은 내외뿐인 것은 떠났다가 돌아온 필자와 아예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웃 사람들이 다를 바가 없다.

▶사촌보다 이웃이라고 했다. 문화의 차이를 탓하고 내버려두면 오히려 외로움만 쌓인다. 벌써 여름 문턱이다. 녹음이 천하에 가득하다. 얼굴에 켜켜이 내려앉는 세월의 나이테를 벗어나지 못하기는 이웃도 나도 마찬가지다. 선한 이웃과 더불어 벗하며 사는 맛에 오늘도 길을 들인다.

박동선·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