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들고 혼자 앉아…

박성기 (맥학원 원장)

2012-06-08     경남일보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한가하게 시조 이야기나 하련다. 시조는 문학인 동시에 음악이다. 예전에 평민부터 임금까지 작자층이었고, 오늘날까지 지어지는 대표적인 국민문학이다.

무수히 전해져오고 창작되는 시조 중에 뛰어난 것을 고르라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 사람마다 취향과 개성이 달라 저마다 다른 시조를 꼽겠지만 윤선도의 이 시조를 으뜸으로 뽑고 싶다.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뭇내 좋아 하노라.’

얼마나 자연에 몰입하여 먼 산의 경치가 좋으면 사랑하던 님이 오는 것보다 좋다고 하겠는가. 말씀도 웃음도 없어도 산중에 홀로 앉아 자연경치를 벗 삼아 안주 삼아 한 잔하는 모습이 선하다. 무슨 기교나 수사가 없어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시조다.

무아경의 이 시조와 달리 진솔하고 문학성이 뛰어난 시조는 단연 황진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역사상 최고의 미모와 재능, 그리고 도전정신으로 충만했던 여성이었다. 남북한을 통틀어 황진이만큼 사랑 받은 역사속 인물도 드물 것이다. 이 시조 역시 예술과 사랑, 자유를 추구한 황진이 자신이 드러나고 있다.

또 한 편의 뛰어난 시조를 꼽자면 윤선도의 시조이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효가 잘 묻어나는 시조다. 홍시를 보고 부모님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은 마음, 효가 이전보다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좋은 시조다.

오늘 ‘잔 들고 혼자 앉아, 동짓달 기나긴 밤, 반중 조홍감’ 시조를 천천히 읊어 보라. 조그마한 감동이 올 것이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감정이 너무도 메마른 것이니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