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이수기(논설고문)

2012-06-14     경남일보
곱고 여린 목소리로 부른 애수의 소야곡, 무너진 사랑탑’ 등의 노래로 궁핍한 민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1940~1950년대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1918~1962). 그는(남인수) 오는 26일이 폐병을 앓다 마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남인수의 타계 50주기를 맞아 후배 음악인들과 팬클럽 등이 손을 잡고 다채로운 추모 행사를 마련했다. 가요황제 남인수는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미성(美聲)의 한 시대를 풍미한 일대 가객(歌客)이었다.

▶그는 18세 때 고향 진주에서 상경하여 데뷔곡 ‘눈물의 해협’을 부른 뒤 각혈을 하면서 취입한 마지막 곡, ‘무너진 사랑’까지 무려 1000여곡의 서정가요를 부른 ‘가요황제’였다. 1938년, 그가 20세 때 부른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애수의 소야곡’ 등은 암울했던 일제치하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불후의 명곡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남인수 50주기를 맞아 지난 1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내년 3월까지 ‘남인수 특별전’이 열린다. 원로·전통가수들은 지난 10일 남인수 추모음악회를 열고, 옛 가요 팬 모임인 ‘유정천리’는 남인수의 노래 250곡을 정리한 기념전집도 낸다. 이처럼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리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대중예술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를 해주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한다.

▶고(故) 남인수는 한국 가요 1세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분명하다. 가요계는 곱디고운 미성은 앞으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1947년에 그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아’에선 남북분단을 절규했고, 1954년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6·25로 피란살이의 애틋한 사연을 담았다. 50주기를 맞았지만 그의 고향인 진주에서는 큰 행사가 없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