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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려 (결혼여성이민자)

2012-07-03     경남일보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닿아 채팅을 했다.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우리는 문학에 푹 빠져 교실에서 곧잘 재잘거렸고,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인기소설을 같이 읽기도 했던 추억담을 나눴다. 단짝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여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자도 그 부분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피드감을 자랑하며 ‘빨리빨리’로 한국이 발전했을지는 몰라도 놓치는 것도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창생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교수의 에세이가 대륙을 강타한 내용이었다. 인생의 정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위지안. 서른살에 세계 100대 명문대 교수가 돼 승승장구했으나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이 많았다.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끝에 서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좋은 차를 살 돈으로 어머니를 한 번 더 찾아뵙고 신발도 사 드리세요.”위지안은 노르웨이에서 유학 후 환경과 경제학을 접목한 시도로 주목을 받으며 서른이 안 된 나이에 푸단대학교 강단에 섰다. 중국 정부는 물론 노르웨이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안해 성사단계에 있었다. 갓 태어난 아들을 보면 행복에 겨웠고, 외동딸을 명문대 교수로 만든 부모님이 성공한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보며 흐뭇했다. 그 순간 말기 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온몸에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이 이어졌다. 그런 고통 속에서 그녀는 절망하고 신을 원망하는 대신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위지안은 삶을 대하는 긍정과 희망, 일에 대한 소명, 가족에 대한 사랑, 건강,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났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는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 이 행복을 행복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겠는가. 인생이란 삶의 감동을 맛볼 수 있는 훈련장이다.

얼마 있으면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1주년이 된다. 아버님은 6·25를 보낸 세대로 5남매를 키우셨다. 시아버지는 임종 전 극한 고통속에서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최고’라며 격려했다. 특히 큰며느리인 나를 무척 아꼈다. 입덧이 심한 내게 고구마를 구워 주셨고, 일터에 나갈 때면 10리길을 마다치 않고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시기도 했다. 며칠 전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산소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딸을 물끄러미 보며 추억에 잠겼다. 7월의 첫주다. 올해도 반환점을 돌았다. 위지안의 말대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어떨까.

유여려, 결혼여성이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