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오늘의 저편

2012-07-06     경남일보
<131>오늘의 저편

“어머니께서 민숙이를 좀 보살펴주세요.”

“넌 뭘 어쩔 생각인데?”

“소록도로 갈 생각입니다.”

진석은 몸을 일으켰다.



소록도??그렇단다. 치료를 겸한 요양 실태가 개선되어 그 섬을 탈출했던 환자들이 지금을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무엇보다도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끼리 서로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아가 나환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삶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럴싸한 후렴까지 들려주었다.

진석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은 단 한 구절도 없었다. 소록도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그의 전신을 싸늘하게 훑었다.

‘이 길밖에 없어. 죽어주마.’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진석은 담담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받아들이기 싫은 운명에 죽음으로 깨끗이 승복해 주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배가 불룩한 민숙의 모습이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진석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무릎을 휘감던 물이 복부로 휘갑쳐 옴을 느끼며 진석은 물속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어날 아기와 민숙을 위해 확실하게 사라져 주어야 하기에.

‘말리진 않겠어. 그렇더라도 민숙에게 말은 하고 가야지. 네 아내가 널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잖니? 모르긴 해도 평생토록 널 찾아다닐 거야.’

머리의 냉정한 충고에 진석은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내에게 풀리지 않을 숙제를 남겨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뾰족구두를 신고 가던 여자가 한강둔치에서 올라오는 진석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흘깃거렸다.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니?”

여주댁은 불쑥 나타난 아들을 향하여 눈을 홉떴다. 어미의 젖가슴에 매달릴 나이가 한참 지난 아들이 다 저녁때에 찾아온 것이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저녁밥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억지웃음까지 지으며 진석은 농담하듯 말했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할 줄 몰랐다.

“올케한테 쫓겨났니?”

평소에 하지 않던 농담까지 하는 동생을 보며 동숙이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예. 물론 쫓겨났어요.”

진석은 무작정 또 웃었다.

“무슨 일 있는 거지?”

여주댁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학교엔 오늘 사표를 냈습니다.”

담담한 얼굴로 진석은 목을 끄덕였다.

“난 안 들을래.”

동숙은 동생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귀를 막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머니께서 민숙이를 좀 보살펴주세요.”

진석은 누이의 등 뒤에 딸려 보냈던 눈을 재빨리 여주댁에게로 끌어왔다.

“넌 뭘 어쩔 생각인데?”

여주댁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들의 뜻을 살폈다.

“소록도로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석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