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개 깔린 숲길엔 흰빛 야생초 아련한 손짓

(100)거창 삼봉산

2012-07-20     경남일보

흰물봉선

해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한결같지 않아 때로는 늦고 어떤 해는 빠르다. 기후변화는 예측이 어렵고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일이라 첨단장비와 사람의 예보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상청의 예보는 빗겨나가기 일쑤다. 기상청에서 장마예보를 하지 않기로 한 지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이맘때면 위도를 따라 오르내리는 장마전선을 따라 기상청의 예보와는 상관없이 장맛비가 내린다. 오랜 봄 가뭄 뒤에 내리는 첫 장맛비는 목탄 대지를 적시는 단비로 모두가 반긴다. 한 때 고대했던 장맛비도 오래 지속하면 불편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폭우로 돌변하여 많은 피해와 상처를 남긴다. 속담에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수분을 충분히 공급 받아도 햇빛이 없으면 곡식은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만 남는다. 옛 사람들은 가뭄보다는 장마와 그에 따른 홍수를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야생초산행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서도 계획대로 100회 산행을 위하여 거창에 있는 삼봉산(三峰山 1254m)을 찾았다. 삼봉산은 거창군과 무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백두대간에 위치한 산이다. 경남의 최북단 덕유산군에 속하는 산으로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금봉암이라는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금봉암이 위치한 남쪽 사면은 노적봉, 투구봉, 부부봉, 신성봉, 칼바위, 장군바위, 마당바위 같은 바위와 암벽으로 이루어진 급사면이다. 삼봉산을 쉽게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금봉암까지 차로 올랐다가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정상을 다녀오는 짧은 회기산행을 주로 한다. 

야생초산행은 거창에서 무주 구천동으로 넘나드는 신풍령(빼재)까지 차로 올라 백두대간을 따라 삼봉산을 올랐다가 소사고개로 하산했다. 신풍령 고갯마루 남쪽사면에는 넓은 주차장이 딸린 휴게소가 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교통량이 많아 성시를 이루던 곳이었으나 도로사정이 바뀌면서 지금은 문을 닫았다.

야생초산행은 휴게소 뒤 도로변 경사면에 설치한 목재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이 길은 산허리를 잘라 신풍령에 새 길을 뚫으면서 부득이 등산로를 우회하여 만든 곳이다. 계단을 지나 10여분 경사면을 오르면 주능선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오르내리는 대간 길이다. 

짙은 녹음으로 뒤덮인 숲속은 잔뜩 흐린 날씨에 대간을 따라 넘나드는 안개까지 더해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빛의 양이 적다. 눈이 숲속 환경에 적응하자 여기저기 희고 붉은 꽃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하늘말나리가 제일 먼저 반긴다. 잎이 돌려나고 꽃이 하늘을 향해 핀 하늘말나리와 이웃하여 고개를 반 쯤 숙이고 잎이 어긋난 털중나리도 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보이는 야생화는 나리 종류와 꽃봉오리 상태인 일월비비추, 한창시기를 넘긴 기린초와 까치수염, 옆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운 숙은노루오줌과 흰 꽃이 피는 여로다.

 

▲왼쪽부터 청가시덩굴, 옥잠난초, 참좁쌀풀, 큰까지수영, 미역줄나무.


비슷한 환경의 등산로가 능선을 따라 이어지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미역줄나무 같은 덩굴식물이 우거져 키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곳도 있다. 종류래야 푸른 꽃이 만개한 청가시덩굴과  미역줄나무가 전부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식생도 달라져 다양한 야생초가 위치에 따라 자리하고 있다.

봉산갈림길을 지나 긴 오르막이 끝나는 곳부터 다른 식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등산로를 따라 늘어선 노란 꽃이 피는 참좁쌀풀이다. 앵초과에 속하는 식물로 깊은 산 약간 습기가 있는 초원지대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꽃은 줄기 끝으로 고깔꽃차례를 이루거나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핀다. 참좁쌀풀의 노란 꽃은 좁쌀풀보다는 크고 가운데 검붉은 무늬가 있다.

등산로를 가로막는 귀찮은 미역줄나무도 꽃은 핀다. 작은 꽃이 모여 핀 하얀 꽃차례도 예쁘지만 꽃이 진 후 맺히는 날개 달린 열매가 더 예쁘다. 등산로를 가로막은 미역줄나무 덩굴을 헤치자 보라색 꽃이 저 멀리 보인다. 꽃창포다. 붓꽃과 구별이 쉽지 않은 꽃창포라 흔히들 붓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보라색 꽃잎의 안쪽 무늬로 구분하는 것이다. 안쪽에 노란색의 좁고 뾰족한 무늬가 있으면 꽃창포고 부채 살 모양의 넓고 화려한 무늬가 있으면 붓꽃이다. 피는 시기도 달라 꽃창포는 붓꽃보다 한 달쯤 늦게 핀다.

능선에는 곳곳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 있다. 금봉암 갈림길을 지나면 얼마간 긴 오르막이 기다린다. 오르막이라고 경사가 매우 급한 곳은 아니다. 지나온 길과 다르게 산죽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산죽이 있는 곳에는 자생하는 식물이 다양하지 못하고 단순하다. 산죽 밭이라도 산죽이 없는 곳은 있게 마련이다. 빈틈에는 벌써 꽃이 핀 며느리밥풀도 있고 옥잠난초도 보인다.

옥잠난초는 이름처럼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로 숲속에서 주로 자란다. 꽃은 마주보는 잎 사이에서 줄기가 나와 그 끝으로 연한 녹색의 꽃이 송이를 이루고 핀다. 비슷한 식물로 나나벌이난초와 구분이 쉽지 않으나 설판이 휘어진 모양을 보고 보다 위쪽에서 구부러지면 옥잠난초다.

오르막이 끝나면 다시 금봉암 갈림길이 나타나고 곧이어 삼봉산 정상이다. 정상에 이르는 짧은 길이지만 오른쪽으로는 곳곳에 전망 좋은 바위가 있어 날씨가 좋은 날이면 빼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바위틈에는 벌써 돌양지꽃과 바위채송화 꽃이 피었고, 같이 메마른 바위에 붙어 자라는 난장이바위솔은 꽃봉오리가 맺혔다. 

정상은 작은 표지석과  십 여명이 머물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을 뿐이다. 조망도 사방이 막혀 지나 온 바위 겉보다 못하다. 다만 주변에서 위치상으로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것이다.

정상을 넘어서면 삼봉산을 상징하는 두세 번의 오르막이 기다린다. 길도 험해지며 온통 바위뿐인 봉우리를 오르내려야하고 오르내림이 끝나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되면 절벽으로 느껴질 만큼 심한 경사가 기다린다. 안개까지 짙게 낀 울창한 숲속이라 사방이 어둡게 느껴져 주변에 만개한 산수국의 나풀거리는 무성화와 흰물봉선, 산꿩의다리처럼 흰빛만 구분될 정도다.

이러한 급경사의 길은 겨우 500m에 불과하지만 비가 내린 후라 미끄럽고 안개까지 끼여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급경사를 내려서면 이내 경사가 완만해지며 고랭지채소밭까지 이어지는 능선에 들어선다. 숲이 끝나면 고랭이 채소밭이 나타난다. 여기가 남쪽지방에서는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경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는 이곳은 높이가 해발 600m에 달해 고랭지채소와 사과가 유명하다. 채소밭을 지나면 소사고개, 야생초산행이 끝나는 곳이다. 빼재에서 소사고개까지 거리는 7km 남짓, 시간은 4시간이 걸렸다.

/농협 진주시지부장

▲꽃창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