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5>

2012-07-26     경남일보
화들짝 놀라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당겨간 화성댁은 정말 숨이 딱 멎는 것만 같았다. 고추밖에 안 되는 그 인민군 두 놈이 사위의 가슴에 총을 딱 들이대고 있었던 거였다.

“이 종간나 쌕끼 돌아버린 거 아님둥?”

그러니까 방금 전의 그 인민군 중 좀 큰놈이 진석의 가슴을 총 끝으로 쿡쿡 찌르며 작은놈에게 목을 돌렸다.

“그냥 쥑여버리시라요.”

작은놈이 조급증을 끓이듯 재촉했다.

“그래. 난 돌았어. 그러니까 그 방아쇠만 잡아당기면 돼.”

진석은 총구를 잡고 자신의 심장에 더욱 딱 갖다 붙였다. 화성댁 마중을 나섰다가 그 인민군과 맞부딪쳤던 거였다. 자연스레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급히 판단을 내려두고 있었다, 민숙에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남편이 아니라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 정도로 기억되면 그만이었다.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도 사라져 주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믿었다.

‘웬순지 사윈지 세상천지에 둘도 없는 불쌍한 작자 아닌가?’

화성댁은 목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혼이라고 한 여자가 남편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서글프고 고달픈지 잘 알고 있었기에.

“네놈들이 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아버진 경찰관이셨어.”

진석은 이제 엄청난 거짓말까지 하고 있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화성댁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시방 뭐라했음둥?

큰놈이 뜸도 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툭’ 소리에 이어 허공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아니. 장모님!”

돌을 들고 선 화성댁을 본 진석은 놀란 눈을 홉떴다,

“저 저놈 잡아라.”

그녀는 뒷산으로 달아나는 작은놈을 향하여 소리쳤다.

총소리에 놀란 민숙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굴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화, 말도 안 돼. 장모님, 얘 죽었어요.”

쓰러져 있는 큰놈의 목을 만져 본 진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진저리를 쳤다. 얼마나 독한 감정을 가지고 쳤으면 단방에 목숨을 앗느냐 말이다.

“얘가 아니고 인민군이네.”

화성댁은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벌컥 냈다. 사위를 살리기 위해 돌로 인민군을 쳤던 것이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한테 살기가 있었던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도 화가 났다.

진석은 말없이 소년의 시체를 가까운 산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왜놈만 물러가고 나면 더러운 꼴 모진 꼴 안보고 살 줄 알았는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화성댁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리며 시체의 발끝에 붙어 따라갔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생사조차 모르는 채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그 어미의 마음이 가슴에 턱턱 부딪쳐 오고 있어서 그녀는 자꾸만 눈물을 훔쳐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