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2>

2012-08-06     경남일보
밧줄을 단단히 묶은 진석은 목매달기 전에 학동으로 얼굴을 돌렸다. 핏빛이 서려 있는 두 눈에선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난 못 본 거야. 죽을힘을 다해 뒤따라갔지만 한발 늦었더라고 그렇게 말하면 돼!’

불에 덴 듯 아프게 화끈거리는 가슴을 주먹으로 누르며 화성댁은 체머리를 흔들었다.

‘민숙아, 잘 살아야 해.’

이윽고 진석은 올가미에 목을 넣었다.

“안 돼. 아직은 안 돼.”

숨어서 훔쳐보던 화성댁은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갔다.

“아니, 장모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놀란 진석은 무작정 다가오는 화성댁을 저지시켰다. 새 생명을 받을 사람에게 나환자 가까이로 오게 할 수는 없었다.

“알았으니까 자네도 그만 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사위를 꾸짖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민숙에게는 이야기하시지 마세요.”

진석은 자신의 목에 걸었던 올가미를 벗겼다.

“같이 내려가세.”

대답대신 마을로 앞장서며 화성댁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용해빠진 내 사위가 무슨 천벌 받을 짓을 했다고 몹쓸 병에 걸리느냐 말이다.’

뒤따라오는 사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화성댁은 끙끙 앓고 있었다.

또 하나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잠든 세상을 내려다보며 밤하늘을 여행하고 있었다.

진통이 좀 멎자 민숙은 잠에 빠져들었다.

화성댁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 딸의 얼굴을 닦아주곤 몸을 일으켰다.

‘아길 낳았을까? 쯧쯧??.’

나환자 부부를 떠올리며 무심결에 혀를 찼다.

마당가에 가마솥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조금 작은 가마솥 뚜껑을 연 화성댁은 큼직한 냄비에 미역국을 가득 퍼 담았다.

그랬다. 화성댁은 민숙의 미역국을 끓이면서 따로 나환자 여자에게 먹일 미역국까지 끓여두었다. 그들이 혐오스럽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했지만 몸에 아기집을 가진 같은 여자로서 가엾다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딜 가시는 거지?’

한밤중에 냄비까지 들고 대문을 나서는 화성댁을 보고 만 진석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을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산모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는 부지중에 장모의 뒤를 밟고 있었다.

막 아기를 낳은 여자 나환자는 축 늘어진 몸으로 누워 있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해산어미한테 맹물만 먹이고 있던 남편은 화성댁이 미역국을 내밀자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