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신뢰지수
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2012-08-07 경남일보
배우 박신양과 전도연이 주연한 ‘약속’은 조폭 두목과 여의사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둘만의 성당 결혼식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대사는 관객의 심금을 울렸고, 헤어질 때 여주인공 채희주가 “니 맘속에서 날 지우지 마. 약속해줘!”라는 대사도 그러하다. 멜로의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패러디한 TV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바람둥이 이정록의 대사는 그의 아내 박민숙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감동 대신 헛웃음을 줄 뿐이었다.
우리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숱한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개인 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개인과 집단 간에 성립되기도 한다. 후자는 개인이 공인의 자격을 가질 때 성립되는데, 개인 간 약속도 중요하겠지만 공인의 약속은 보다 엄격한 검증을 받거나 도덕성을 갖는다. 이러한 약속의 전제는 믿음이고, 믿음은 곧 신뢰이기에 약속이행은 신뢰지수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어떤 상황을 나타내려고 일정한 때를 100으로 하여 나타낸 수’를 지수(指數)라 하는데, 신뢰지수는 그 사람의 약속이행 정도, 즉 신뢰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수치가 높으면 타인들로부터 믿음의 정도가 클 것이고, 낮으면 정반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한 약속을 다 지키며 살 수는 없다. 지키지 못할 뚜렷한 명분이 있거나 상황의 변화 속에서는 송나라 양공(襄公)같이 융통성 없는 어짊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정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는데, 맹자는 이를 융통성, 즉 권도(權道)라 했다.
대선을 4개월 정도 앞둔 요즘,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언행에 대한 검증이 활발하다.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낮으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고, 자신의 바뀐 언행을 순간마다 합리화하려 하면 믿음의 정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안개만 피우면서 출마를 저울질하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질 임기를 지키겠다고 핏대 올려 당선 된 뒤에 아전인수적 명분으로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분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을 수는 없을 것이다.
출세한 공직자나 성공한 CEO의 공통점 중 하나가 사소한 약속도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약속을 밥 먹듯이 어겨 약속시간마다 늦는 애인이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그 고백의 신뢰도는 크게 높지 않을 것이기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 나는 묻는다. 당신은 부모로서, 친구와 부부로서, 연인이나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뢰지수는 얼마나 됩니까?
/문형준·진주동명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