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0>

2012-09-14     경남일보
 “어머, 민숙이 아기 낳았겠죠? 몸조리를 잘못한 모양이죠? 뭘 낳았나요? 아이 낳고 생긴 병은 아이 하나 더 낳고 몸조리 확실하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떡하누?” 

 제법 걱정 어린 표정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가 보세요. 난 민숙이 년 약 구하러 읍내에 가는 길이어서 그만 가봐야겠어요.”

 화성댁은 읍내로 발길을 당겼다.

 “화성댁!”

 나팔댁은 목청을 있는 대로 높여 가는 사람을 불렀다.

 “아이쿠, 귀청 떨어지겠어요.”

 더는 상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화성댁은 무심결에 몸을 뒤로 돌렸다.

 “코쟁이 군인 만나면 조심해요.”

 나팔댁은 체머리까지 흔들었다.

 “예엣? 코쟁이는 우리 편이라고 하던데?”

 “그 놈들은 ‘불총’을 가지고 다닌 데요.”

 “글쎄, ‘불총’이던 물총이던 같은 편한테 왜 쏘겠냐구요?”

 화성댁은 짜증을 냈다.

 “말이 안 통하니까 빨갱인지 우리 편인지 모르겠나 봐요. 산속에서 나오거나 굴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무조건 ‘불총’으로 쏘아버린대요. 산 밑에 있는 어떤 마을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대요.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다 몰살당했고요.”

 나팔댁은 입에 침을 튀기며 열변했다.

 “설마, 그럴 리가?”

 두려움에 감전된 화성댁은 상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냥 몸을 돌려 읍내 쪽으로 향했다. 그녀로선 태반을 구하기 위해선 산파의 집을 찾는 일이 더 급했다.

 “코쟁이가 뭐라고 물으면 무조건 ‘노’라고 하세요.” 

 나팔댁은 꼬부랑말이라고 덧붙여 설명하며 ‘예스’라는 말도 있다고 꽤나 아는 체를 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인데요?”

 화성댁은 몸을 도로 돌리고 말았다. 코쟁이 군인들이 들어와 있는 판국이었다. 나팔댁의 말이 사실 반 거짓 반이더라도 꼬부랑말을 한마디 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코쟁이들이 빨갱이냐고 물으면 무조건 ‘노, 노’라고만 하면 된다니까요?”  

 이번에는 나팔댁이 먼저 몸을 돌렸다.

 ‘노, 노? 아니라는 뜻인가? 어쨌든 어렵지는 않구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녀도 몸을 돌렸다.

 ‘아니, 저, 저렇게 활보를 해도 되는 거야?’  

산파의 집을 수소문하며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까지 오고 만 화성댁은 얼굴과 손을 누런 광목천으로 감은 여자들을 보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들을 나환자라고 치부해 버린 것이었다.    

 “저, 말씀 좀 묻겠는데유?”

 그녀들 중 한 사람이 화성댁 앞으로 다가왔다.

 “모, 모르니까 저리 가세요.”

화성댁은 소리부터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들과 말만 섞어도 나균이 옮겨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