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3>

2012-10-19     경남일보
“어미는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거라.”

화성댁은 아랫목에 깔려 있던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있어서인지 좀처럼 몸이 풀리지 않았다.

“잘도 넘어지시면서??. 그럼 쉬세요.”

민숙은 입을 쑥 내밀며 사립문으로 향했다. 새벽잠을 깬 남편이 뒷마당에서 일없이 걷고 있을 시간이었던 것이다.

“오냐. 얼른 가라. 살림하는 여자가 꼭두새벽부터 마을은 왜 다니누?”

화성댁은 문에다 대고 그냥 입을 삐죽거렸다.

‘어머, 이건?’

민숙은 사립문 밖으로 나서다 말고 땅에 눈을 박았다. 눈 위에 떨어져 있는 생흙부스러기를 보고 만 것이었다. 직감적인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며 어머니를 급히 불렀다.

막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던 화성댁은 놀란 눈을 홉떴다.

“피난 왔던 그 사람들 언제 갔어요?”

“어제 낮에. 우리 마을은 서울이 가까워서 불안했던지 대구나 부산으로 간다고 하더구나.”

화성댁은 없었던 말까지 만들어서 엮어댔다.

“갓난아기는 어떻게 되었어요?”

민숙은 유도질문을 하듯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 되다니? 어미 품에 꼭 안겨서 갔지.”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화성댁이 아니었다.

이제 민숙은 눈 위에 띄엄띄엄 인절미 고물처럼 떨어져 있는 그 흙을 따라 가고 있었다.

딸이 돌아가는 기척을 느낀 화성댁은 서둘러 이불 속에서 나왔다.

‘그래, 약병아리야! 암, 틀림없는 약병아리이야.’

아기시체를 숨겨둔 항아리 뚜껑을 열며 그녀는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앞뒤 없이 중얼거렸다. 즉석에서 세뇌되어 버린 사람처럼 뜸들이지 않고 약병아리를 가마솥에 넣었다. 싸리나무 잎도 잔뜩 넣었다.

뒷산입구까지 간 민숙은 몸을 돌렸다. 더 갈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어서 더는 갈 수가 없었다고 해야 옳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아냐, 아닐 거야?’

그녀는 코 옆의 집에는 잠깐 들리지도 않고 곧장 친정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단단히 서려 있었다.

가마솥 안에서 북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 화성댁은 불을 낮추었다. 이젠 서서히 달이기만 하면 되었다. 불현듯 생각이라도 난 듯 삽짝께로 달려가선 고리를 안으로 걸었다.

‘이건 아냐. 아닌 건 아닌 거야, 이럴 순 없어.’

친정으로 다시 오고 만 민숙은 사립문 고리가 안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보곤 체머리를 흔들었다. 짜임이 엉성한 데다 키도 높지 않은 삽짝 고리를 너무 쉽게 벗겼다.

“이년아, 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