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다락방

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2012-10-29     경남일보
시집오기 전 내가 살던 곳은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가 있고 곡각지 삼거리에 아폴로 만화방도 있었다. 자목련, 백목련 두 그루가 마주한 우리 집 마당 화단에는 엄마가 좋아하던 제라늄이랑 채송화, 샐비어(사루비아)가 제철마다 피고 졌다.

햇빛 한가득 들어오는 마루는 니스칠을 곱게 하여 엎드려서 숙제하기 딱 좋은 나만의 책상이었다. 그런 곳이 우리 집에 또 한 군데 더 있었는데 엄마에게 혼나거나 만화책을 몰래 볼 때 애용했던 ‘꿈꾸는 다락방’이 바로 그곳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원하고 소망했던 것도 많았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동화책은 보통 주황·빨강 커버를 입고 전집으로 판매되어 너무 비싸 어지간한 집에는 잘 없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폴로 만화방에 들러 민애니, 엄희자, 독고탁 등이 손으로 그리고 쓴 만화책을 빌려와 다락방에서 혼자 읽고 또 읽으면서 이런저런 내 미래 모습을 꿈꿔보곤 했다.

그 당시의 만화는 야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 전래동화나 이솝동화 같았고, 간혹 ‘베르사이유의 장미’처럼 제법 세계사적인 내용의 것도 있었다. 나는 그 다락방에서 나와 함께한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던 것 같다.

이제는 손 글씨가 아니라 컴퓨터로 작업한 글씨를 넘어 가상공간에서 책을 텍스트로 읽는 시대가 되었다. 누런 용지의 만화책과 함께 어릴 적 꿈을 키우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한 책으로 인생의 중반을 맞이한다.

제목에 끌려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해 읽은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은 꿈을 싹 틔웠던 내 어린 시절의 다락방의 용도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는, 즉 꿈을 단순히 추상적인 공상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내 바람이 이루어진 모습을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그려내다 보면 어느새 그것은 상상이 아닌 실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꿈을 꾸는 것보다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념 쪽을 더 많이 내포하는 내용이었다.

소담한 다락방에서 꾸었던 ‘꿈’이라는 것이 내게도 분명 있었을 것인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만 쓰는 용어인 듯 정작 내 꿈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 꿈은 무엇이었던가?’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어떤 형태로든 나만의 다락방에서 꿈 꿀 여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요즘이다.

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