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빠서 죽지, 일 많아서 죽지 않는다

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2012-12-03     경남일보
지난 주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신문에 게재되는 나의 글을 읽으시고는 “직업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어 유감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지난 10월부터 11월 말까지 한 해 동안 교육한 활동내용을 공개하는 전시회, 학예회 그리고 보고회를 비롯한 비중 있는 행사를 가졌다. 우리 학교도 경상남도교육청에서 지정한 연구학교(시범) 보고회를 지난주에 가졌다. 1~2년 간 추진해 온 여러 가지 결과들을 특색수업과 보고회를 통해 선보임으로써 다른 학교에서 벤치마킹하거나 정책 연구의 주요 자료로 쓰이기도 하는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이웃 학교부터 제법 먼 학교까지 해당 학교를 방문한다. 우리 학교 역시 그런 이유로 방문할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하나부터 열까지 손가는 일이 제법 많았다. 손님이 오면 이불이라도 개어야 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런 중요한 업무를 맡아 추진해 나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관계’가 참 어렵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학교라는 사회는 80% 이상이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학생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등, 특히 이렇게 큰 행사를 준비하다보면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업무의 양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얼마나 그 관계를 위한 고민과 훈련을 했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서른 즈음, 경험 없고 철없을 나이에 보고회 업무를 맡아 추진했을 때가 참으로 부끄럽다. 관계에 대한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내 말투와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한 적절치 못한 반응이 직장동료들을 많이 불편하게 했을 것 같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사람은 말이다. 기분 나빠서 죽지, 일이 많아서 죽지는 않는단다. 아무리 고된 일이 있어도 마음만 맞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더라”라는 말씀을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 관계에 대한 훈련이라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귀중한 삶의 방식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비법을 내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보고회를 준비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정호승 님이 쓰신 책의 구절을 되뇌며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한마디,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한마디, 행복을 전하는 한마디를 보고회를 준비하는 동료들에게 매일매일 해 주어야지’하고. 그랬더니 모두 함께 행복하게 보고회를 준비했고 무사히 마쳤다.

그 날 오신 손님들이 그랬다.

“이 학교는 왜 이리 예쁜 선생님들이 많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