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2012-12-31     경남일보
눈사람 한사람이 찾아왔었다

눈은 그치고 보름달은 환히 떠올랐는데

눈사람 한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마당에 불을 켜고 맨발로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부끄러운듯 양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눈사람 한사람이

편지 한장을 내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새도록 어디에서 걸어온것일까

천안 삼거리에서 걸어온것일까

편지 겉봉을 뜯자 달빛이 나보다 먼저 편지를 읽는다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이말만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해설= 감추어둔 기억일수록 오래 가는 것, 숨겨둔 사진첩의 다쳐진 그녀의 입술처럼, 불현듯 묵은 상처에 새 피를 흘리고. 순백의 세상은 달빛마저 푸르다, 시방 언 발로 달려 올 것 같은 기별에 귀 열어두고 모두를 추억으로 보듬고 새 해가 바쁘게 강을 건너고 있다.(진주문협 회장 주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