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머문 자리는?
김정완 (농협 창원지법 진주지원 출장소장)
2013-01-30 경남일보
어차피 우리 삶이 만나고 머물다 또 헤어짐을 반복하는 일이라면 내가 머문 자리가 어떠해야 할지, 그 자리를 떠난 후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공중화장실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글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란 문구이다.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여러분 댁의 화장실도 이렇게 사용합니까? 술 마시고 바닥에 토하고 소변을 아무 데나 갈기고 부인에게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합니까? 나도 따뜻한 가정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집에 가면 나도 여왕처럼 대접받습니다. 집이나 직장에서는 고상한 척하고 술 한 잔 마시면 개처럼 행동하십니까? 선진 문화인답게 밖에서도 집에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십시오.…” 어느 환경미화원의 절절한 외침이다.
내가 머문 자리가 이토록 추악하고 더럽고 혐오스럽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바람직한 삶인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요즘 도덕 불감증에 걸린 어른은 물론 청소년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 없이 아무렇지 않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술 먹고 추태 부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위정자의 독선과 오만, 무능과 부패로 백성의 살림살이가 힘들어진다면 어찌 머문 자리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고, 머문 자리가 깨끗해야 하며, 지나간 자리는 가지런해야 한다. 한집안 식구라도 화장실 사용 후 내가 머문 흔적을 깨끗하게 정리해 뒷사람이 불편 없게 하는 일은 기본이다. 공공장소에서도 내가 머문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후임자에게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물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오는 이나 함께 머문 이가 불편하지 않고 서로의 믿음이 싹틀 것이다. 또 우리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는 일이나 재정적자로 인한 빚더미를 자손에게 안겨주지 않는 일도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가 머문 자리에 아름다운 향기와 고운 흔적이 남는 의미 있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산대사의 시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지날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