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으로 통일신라시대 엿본다

국립진주박물관 '사천 선진리 신라비' 상설 전시

2013-03-27     강민중
사천 선진리 신라비 비문
사천 선진리 신라비 비문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진화수)은 26일부터 사천 선진리 신라비(泗川船津里新羅碑·이하 신라비)를 상설전시관 역사문화실에 전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신라비는 2004년에 사천시 선진리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비석이다.

이 비석에는 앞뒤 면에 모두 46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 새겨진 글자들은 출토 당시부터 통일신라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로 인식되어 고대사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높이 76.0cm, 두께 18.0cm인 이 신라비는 원래 비석의 1/4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있는 신라비의 앞면에는 (1열)경득나마□□□(更得乃末□□□)…/ (2열)국주천운대왕상대등□(國主天雲大王上大等□)…/ (3열)신술시주총관소간(神述時州總官蘇干)…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열)향도상요언대덕현령(香徒上了言大德縣令)…/ (2열)나마체진상촌주파(乃末體眞上村主)…/ (3열)□□□□…이라 음각돼 있다.

비문에 새겨져 있는 글자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관등명(官等名)과 인명(人名)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비에는 제36대 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년)의 생전 이름인 ‘천운(天雲)’과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년)의 장인의 이름인 ‘신술(神述)’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이 비의 제작 시기가 통일신라 혜공왕 대 전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공왕 대에는 귀족들이 잇따라 반란을 일으켜 국왕이 피살되는 등 정치적인 혼란이 심하였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이 비석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나라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고자 승려와 지방관들이 향도(香徒)를 조직해 만든 것이다.

진주박물관 관계자는 “전시를 통해 통일신라 혜공왕 대의 혼란했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많지 않은 고대 금석문을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