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부지런하고 눈은 게으르다

배영선 (진주문화재단 이사)

2013-04-11     경남일보
꽃샘추위와 황사가 번갈아 찾아오긴 해도 매화 진 자리에는 벚꽃이, 산과 들의 진달래, 개나리가 지천이니 봄은 계절의 여왕이 확실하다. 현대인이 바쁜 일상과 생활 전선에서 최선을 다하느라 봄이 왔어도 돌아볼 겨를 없이 힘들어 할 때 자연은 소리로, 빛깔로 다가와 귀띔을 해 준다. 봄이 왔다고.

이렇게 꽃피는 봄이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여유도 찾아보고 겨우내 묵었던 때도 벗겨내고 봄을 닮은 커튼이랑 손바닥만한 봄 꽃도 한 켠에 놓아 집안을 봄 단장시켜 보고 싶은 생각을 여자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아기자기한 소망은 남자보다는 물론 여자에게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봄이면 부지런함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는 나 역시 모처럼 봄의 휴일을 즐기고자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사수하였다. 쌓였던 피로도 해소하고 즐겨보던 TV도 마음껏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것도 잠시, 그런 내게 창고를 치우자, 소파를 들어내어 달라, 앞 베란다에 못을 쳐 달라는 등 자질구레한 아내의 요구가 이어졌다. ‘참 피곤하게 한다. 모처럼 나도 휴식을 취해보고 싶다. 저렇게 눈치가 없을까? 저걸 언제 다 치우나?’ 표현은 안했지만 아내가 내심 성가시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덜덜 볶이는 것보다 나아 천근이나 되는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또 한 번 실감났다.

살아가다보면 ‘저 많은 일을 언제 다 하나’ 싶을 때가 있다. 태산같이 쌓인 일을 눈은 ‘걱정된다, 하기 싫다’라고 마음속으로 게으름을 부추기고 손은 부지런하여 어느새 태산도 옮겨 놓을 기세다.

그 봄날의 대청소도 그랬다. 눈은 게을러서 집안일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 자율이 아닌 아내의 강요로 시작되었지만 말끔하게 정리된 세간살이며 집안 이곳저곳이 봄을 100배 즐기게 해주어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부지런한 손이 하자는 대로 우리 복지원에도 손의 향연을 펼칠 생각이다. 날씨가 풀렸다고 마구 대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께 상쾌한 기운을 더 많이 선사해 드리고자 천연 방향제를 뿌린 듯한 봄내음을 전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게으름쟁이 눈보다는 부지런한 손이 오늘은 왠지 끌린다. 봄의 황사가 한 차례 지나고 나면 대대적으로 안팎을 청소하여 게으름쟁이 눈을 즐겁게 해주자.

/진주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