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2013-05-14     경남일보
1850년 나사니엘 호손이 쓴 소설 ‘주홍글씨’는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도덕률 속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을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낸 역작이다. 간통한 사람에게는 가슴에 주홍글씨로 간통(adultery)의 첫머리 글자인 ‘A’자를 새긴 채 일생을 살도록 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헤스터가 주홍글씨의 굴레 속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헤스터는 그녀가 낳은 아들과 함께 교수대 위에서 3시간 동안이나 군중 앞에 노출됐으나 결국 간통의 상대는 밝히지 않았다. 이때부터 젊고 유능한 목사 딤즈데일의 고통은 시작된다. 헤스터와의 간통을 고백하자니 목사로서 쌓아 올린 명성과 영성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헤스터가 자기를 감출수록 더 큰 고통 속에 빠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딤즈데일은 날로 야위워 간다.

▶소설은 헤스터 남편의 치밀한 복수극이 조여 올 즈음 딤즈데일이 교수대에서 헤스터에게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보여주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리고 목사 딤즈데일은 숨은 거둔다. 남이 볼 수 있는 가슴의 주홍글씨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의 주홍글씨가 더욱 아프고 힘든 낙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간통죄가 없어졌다. 그러나 성적 범죄와 배후자에 대한 기만은 가슴속 주홍글씨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딤즈데일이 명성과 청교도적 삶 속에서도 헤스터가 홀로 감당해온 주홍글씨를 그는 가슴속에 새겨 놓고 일생을 아파했던 것처럼. 그래서 양심의 법이 가장 무서운 것인 성싶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