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돈 묻기

이수기 (논설고문)

2013-05-29     경남일보
지난 2011년에 김제시 금구면의 마늘 밭에 불법 도박사이트로 벌어들인 거액 110억원의 현금을 묻어 두었다가 들통나 항간에는 ‘돈 벌려면 금구면에 가서 마늘밭을 파봐’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일본은 은행 연 금리가 0.04%로 낮고, 장롱 속에 두면 소실 위험이 있어 손에 닿는 집마당 땅에 묻어두는 인사가 많다. 요즘 5만원권으로 15억원이 들어가는 금고는 없어서 못 판다. 지하의 돈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게 아니라 안방 금고로 들어간다. 예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밝힌 통화승수는 16년 만에 최저일 정도로 돈이 돌지 않는 ‘돈맥현상’을 보이고 있다.

▶옥석을 가려야지만 조세피난처에 은닉한 검은 돈 규모가 중국 1조1890억 달러(1308조원)과 러시아 7980억 달러(878조원)에 이어 한국이 7790억 달러로 검은 돈 동메달을 당당히 딴 나라라 한다. 과장된 금액이라 하나 ‘검은머리외국인’이라고 칭하는 한국계 투자자들이 지난 40년간 해외로 빼돌린 탈세금액이 857조원으로 세계 3위라 한다.

▶구설수에 오를까봐 부자들이 호화 주택을 못 짓고, 대기업들은 국내가 아닌 하와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 전략회의를 갖는다 한다. 그들을 국내 호텔에서 전략회의를 갖도록 도와주면 일자리가 생기고, 돈이 국내에서 돌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다.

▶현금은 개인 금고에, 송금도 현금을, 백화점 VVIP(보통 연 4000만 원 이상 고객)에서 이름을 뺀다 한다. 조세피난처에서 실수 또는 어리석게도 한국이름이 아닌 외국이름으로 된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도 금리가 낮고, 상속 때 세금을 피하려고 마당 등 땅에 묻거나 금고에 보관이 늘고 있다. 조세피난처의 245명 명단이 속속 공개되자 그들은 당혹하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부패전쟁이 필요한때다.

이수기·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