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이홍섭 시인)

2013-06-10     경남일보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작품설명: 헐렁해진 아버지, 만용의 권좌에서 허물어진 그 존재가 더 유순히 길들여지기까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가시는 늘 따가웠나 보다, 이제 겉돌았던 아비의 행적을 짐작할 수도 있는 나이, 갑자기 큰 가시 하나가 목을 찌른다.(진주문협회장 주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