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雨絃)환상곡 (공광규 시인)

2013-06-24     경남일보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현(絃)이어서

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

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

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소리



화초들은 몸이 젖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

수목들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비바람을 종교처럼 모시며 휘어지는데

오늘은 나도 종교 같은 분에게 젖어 있는데

이 몸에 우주가 헌정하는 우현환상곡.



※작품설명: 하늘로 연결된 수 만개의 비 기둥과 바람의 협주 속에서 젖은 세상의 음악이 시연되고, 터지는 비 알갱이 밟으며 아무데나 휘어지고 기웃하면서 거룩한 종교 같은 연민에 경사되고 있다. 시퍼런 한 줄기 말씀을 기다리는 피뢰침 같이, 이 장마철에 젖어있다.(진주문협회장 주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