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황혼이혼을 생각하다

김병철 (관봉초등학교장)

2013-07-12     경남일보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그의 나이 오십에 이르자 하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천명(天命)을 알게 돼 지천명(知天命)이라 했고, 나이 예순이면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믿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올 4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이혼 건수는 총 9200건으로 조사됐고 이중 20년 이상 함께 살아온 50대 후반 또는 그 이상의 부부들의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라는 자료 때문이다. 지금의 황혼세대라 함은 어릴 적 점심시간에 먹을 게 없어 가끔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쓸쓸히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많았을 세대들이다. 이제껏 잘 버텨오던 분들이 왜 갑자기 심사가 엉클어져 버렸을까.

이혼사유를 들어보면 금전문제보다 성격 탓이거나 배우자의 부정에 마음의 상처를 오랫동안 입은 결과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난 다음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또 아내 쪽에서 남편의 퇴직금 반을 노려 홀로서기하며 노년의 편안한 삶을 누리고자 이혼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참으로 아연실색할 일이다. 주변의 젊은 이혼 남녀들의 경우 그들의 이혼배경을 살피면 그들의 성장기에 뜻하지 않는 부모의 무책임한 이혼이나 가정폭력 등으로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대물림으로 이혼을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꿔 말해 화목한 가정에서 올바르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행복한 삶을 누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니 새겨들을 말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안동에 살던 고성 이씨 젊은 양반이 오랜 병마와 다투다 끝내 서른 한 살의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이 무렵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는 차마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기 서러워 숨을 거둔 남편의 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 줄기에 묶어 엮은 미투리 한 켤레와 한 장의 언문편지를 써 가슴에 얹어 보냈다고 한다. 410여년이 지난 1998년께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내 한 무덤에서 발견돼 세간에 회자된 언문편지 글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원이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지만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

참으로 가슴 뭉클한 옛 사람 부부의 정에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랑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기만 한 인생이거늘 우리네 요즘 인생사가 너무 허술해 보이기만 하는 건 어디 내 생각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