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없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2013-07-19     경남일보
삶에 남이 가 본 길에는 부가가치가 적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해본 것들의 가치가 진부하기 때문이다. 부의 형성 개연성이 낮다는 말이다. 부(富)의 형성과 그 철학적 정당성에 많은 논의가 있다. 부가 현실 삶의 조건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의 ‘부와 빈곤’은 이런 문제를 풀고 있다. 부의 기본적인 개념은 인간의 유한성, 자유, 책임, 희망, 존엄성을 전제로 하며, 삶의 축복은 오직 끝없는 자기완성의 길에서 나온다. 삶은 항상 새로운 자기완성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삶은 고독과 같이하고 그리고 부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은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잘살기를 원한다면 필히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부를 갈구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인간 본성 그대로 주의라고까지 한다. 석가는 ‘부는 바닷물과 같아서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말라지는 법이다’라고 했다.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살고 그 때문에 가난한 것은 청빈(淸貧), 욕심도 많고 깨끗하게 살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아닌데 가난한 것을 적빈(赤貧)이라고 한다. 가난해지고 싶어서 가난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황제 푸이’, 한때는 천하가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쥐라기 공원 거대한 공룡이 세상을 주름잡던 시대도 있었다. 그 시대에는 그 공룡이 영원한 강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강자가 지금은 왜 하나도 없을까. 남긴 것은 흙 속에 묻힌 희미한 흔적과 바위에 남긴 몇 개의 발자국뿐이다. 영원은 없다. 부도 돌고 도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 인간의 의지가 있다.

이재현·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