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 (백석 시인)

2013-07-22     경남일보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낮이 옛날처럼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웠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작품설명= 지아비는 곁을 떠났고, 보채던 어린 딸마저 도라지꽃이 만개한 돌무덤으로 거둔, 옥수수 팔든 그 파리한 여인의 선택은 절집 마당귀에 머리카락을 뿌리는 일, 서럽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 암자에서 비구니로 만나 속세의 기연을 다 지우지 못하고 경배하는 사연들이 늦가을의 서리처럼 가슴을 시리게 한다.(진주문협 회장 주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