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기생 산홍을 만나다

홍수옥 (시나리오 작가)

2013-08-02     경남일보
몇 해 전,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 인사동 괴짜시인으로 유명하신 송상욱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요즘 뭐해?”

“그냥 뭐 쓸까 고민하고 있어요.”

“고민할 게 뭐 있어. 산홍이 한 번 써 봐.”

이 한 통의 전화가 이렇게 나와 산홍의 인연을 맺어줄 계기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우선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자료를 찾아봤다. 산홍은 기생의 몸으로 조국 독립에 힘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또한 그녀는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매국노 이지용에게 거침없는 한 방을 날린 여장부였다. 알면 알수록 아름다운 용모보다 더 돋보이는 그녀의 기개가 점점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산홍의 숨결을 하루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 무작정 진주로 찾아갔다. 태어나 처음 진주 땅을 밟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터미널에 내리고 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아는 곳이 촉석루밖에 없어서 일단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촉석루에 도착해서 전화로 송상욱 선생님께 진주에 내려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미리 간다고 이야기를 했으면 진주가 고향인 시인 박노정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연락을 넣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셨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무턱대고 떠나 온 것이 후회가 됐다.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지금이라도 한번 연락을 해 볼 테니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박노정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고, 선생님은 곧바로 촉석루로 달려와 주셨다. 박노정 선생님은 진주사람도 잘 모르는 산홍에 관심을 가져주고 이렇게 먼 길까지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의 산홍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으신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박노정 선생님과 함께 산홍이가 거닐었을 촉석루와 대나무 숲을 걸었다. 남강을 굽어보면서 밤이 깊도록 그녀의 삶과 애환에 대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산홍을 향한 내 열정에 고마움을 표하셨고, 이제야 산홍이의 삶을 제대로 이야기해 줄 임자를 만난 것 같다며 격려해 주셨다.

산홍은 논개 이상으로 조국을 사랑했던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진주사람조차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니 조금은 의아했다. 그날 이후 나는 몇 차례 더 진주를 다녀왔다. 진주남강유등축제 기간에 진주를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가을 밤 남강을 수놓은 유등의 아름다움은 판타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이면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대치한 가운데 성 밖의 의병과 지원군과 연락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혹은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남강에 유등을 띄우거나 하늘에 풍등을 날린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진주의 유등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아픈 과거를 간직한 진주의 역사이고 전통이다. 이는 곧 핍박과 설움의 역사로 얼룩진 이 땅 민초들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진주의 유등이, 진주 기생 산홍의 삶이 역사 속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 살아 있는 역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는 그 뒤 서울등축제를 보게 되었는데 진주유등축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러차례 온 몸으로 절절하게 느낀터라 그런지 가슴이 쓰렸다. 누가 뭐래도 남강유등축제는 진주만의 고유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에도 나는 여러 이웃을 재촉하여 진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입을 벌리고 놀라는 모습을 이만치서 바라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