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끄러운 마케터의 고백

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2013-09-10     경남일보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박을 꿈꾼다. 나 역시도.

그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사회복지기관의 마케터가 대박을 꿈꿔도 되는가?’라는 궤변이. 우리의 대박은 어쩌면 누군가의 비극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가진 마케팅 자원들 중에 대중이 반응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그것들은 한결같이 누군가에겐 인생을 뒤흔드는 비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렇다.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이 많은 모금액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아이가 자살을 택한 것이 사회적 이슈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관의 대표적인 캠페인 성공사례로 ‘아동 성범죄자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꼽는다. 이 서명은 국회에 제출되어 실제 법안이 바뀌는 성과를 거두었고, 조정과 시행을 거쳐 이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다. 그리고 그 서명운동의 배경에는 흉악범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 나영이가 있었다.

잘못되진 않았다.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아동들을, 성범죄 피해아동들을 물질적·정서적으로 지원해야 했고, 그들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에 이 참혹한 현실을 알려야만 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였다. 그런데 불현듯 찾아온 죄책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나의 개인적인 부끄러움일 것이다.

나는 일 년 사이에 조금 변했던 것 같다. 대중이 더 반응할 수 있는 자극적인 아동사례를 찾아 헤매는 방송사례 담당자를 보며 ‘이것이 정말 복지이며 구호인가? 누구를 위한 원조인가?’라는 고민을 할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희귀병에 걸린 아동이 환아 모금방송에 나왔다. 방송을 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동의 수술비를 위해 힘을 모았지만 아이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후 아이를 추모하는 책도 출간되었다. 모니터링을 하던 나는 무의식중에 모금을 진행한 기관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을 자각하고 적잖이 충격 받았다. 나는 정녕 아이의 죽음 앞에서 든든한 홍보사례를 보유하게 된 운 좋은 기관이 어디인지 궁금해 한 것인가.

실은 사회복지기관 마케터에게 대박 아이템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인 것은 아닐까. 사회가 나서서 도와야 할 사람이 없을 때 세상이 정말 행복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날이 쉽게 오지 않을 것을 안다. 내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에 대해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하고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이 답인 것도. 다만 ‘이 땅의 어린이는 모두 행복할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나의 역할이 필요 없는 세상이 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희망사항을 간직한 마케터가 되기를 바라본다.

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