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뎃잠

김순철 (지역자치부장)

2013-11-25     김순철
16년 전 이맘때 우리에게 매우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날 IMF 외환위기가 강타했다. 외화 보유고가 바닥나서 경제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뒤따랐다. 당시 국민적 고통 속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범국민 금모으기’ 운동에 너도나도 동참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그 덕택에 4년 만에 어둠의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위기에 맞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응집력에 전 세계인이 놀랐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정든 회사를 등진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고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가장의 멍에를 진 이들은 길거리를 방황하며 삶의 회의에 빠지곤 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모두들 가슴 아파했다.

▶그때 ‘노숙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린 이들은 칼바람을 피해 역 대합실이나 지하철 복도로 몰려들었다. 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신문지를 덮은 노숙인 행렬이 사흘이 멀다 하고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곤 했다. 노숙인 쉼터가 등장하고, 자선단체에서 베푼 무료급식에 장사진을 이뤘다. 그해 겨울은 얼마나 추웠고 또 길었는지.

▶뒹구는 낙엽이 황혼을 재촉하는 계절이다. ‘한뎃잠 자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엔 추위와 맞서야 하는 이웃이 있다. 이들은 냉방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니 한뎃잠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또 추위보다도 더 서러운 일은 뚝 끊어진 온정의 손길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거라는 예보에 걱정이 태산 같다. ‘한뎃잠’이란 낱말이 우리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