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틴과 살생부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2013-12-18     경남일보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사형도구로 단두대를 사용했다. 단두대는 칼날이 무디고 고통이 심해 파리대학 교수였던 기요틴이 개량해 후에는 기요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는 이 단두대를 1792년부터 사용, 1981년 사형제도가 없어지면서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다. 이전에는 유럽에서도 처형 이전의 고문과 화형,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 처형제도가 만연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기요틴은 권력을 유지하는 공포의 도구로 사용됐지만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 피에르도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루아네트도 생전의 사치와 화려함을 뒤로하고 기요틴의 제물이 됐다. 기요틴은 당초 사형수의 목숨을 단숨에 끊어 고통을 줄이자는 인도적 의도가 있었으나 후에는 정적을 처단하는 정치적 도구로 많이 악용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역사상 유명한 정적 제거는 계유정난을 꼽을 수 있다. 수양대군은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를 바탕으로 거사일을 잡아 한꺼번에 많은 정적들을 제거한다. 하루 종일 살육전이 펼쳐져 궁궐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때에 희생된 사람이 육진을 설치해 여진족의 노략질을 막았던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판 등이다. 수양은 후에 단종을 폐하고 세조로 등극한다. 살생부를 작성한 한명회가 일등공신이 된 것은 불문가지이다.

▶지금 북에선 권력재편의 살육전이 한창이다. 김정은 체제를 굳히기 위한 친위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북한의 잔인한 처형방식과 김정은의 살생부다. 수많은 북한 인사들이 계속될 살생부의 위력에 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살생부가 남쪽인사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