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김유석 시인)

2013-12-23     경남일보
달팽이
-김유석-



내 몸엔 나선의 미로가 들어있다. 몸속에서 헤매다



몸 밖의 또 다른 미궁으로 겨우 기어 나와 두리번거리는 걸 길이라 한다.



곡선을 풀어 곧은 행적을 남겨야 하는 나는 고행의 족속, 동시에



끈끈한 흔적을 태엽처럼 몸에 되감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나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 가다 보면 안과 밖이 바뀌는 걸음도 어지러워



점점 더 느리게 가는 쪽으로 진화해가는 중이다.





▲작품설명= 엄숙한 기도는 아직도 간절한데 일상은 언제나 절벽 위에 서성이다 이내 관념의 늪에 허우적대었고, 미로 같은 삶의 방정식은 난해하여 해법은 늘 멀리 두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안의 구조의 태엽을 조금씩 풀면서 항해한 항적들이 서투른 조타수처럼 비딱 비딱하다, 세상은 안개처럼 목적물의 침로를 가려놓고 추정으로만 다 다르라고 내 몬다, 촉수로 더듬어 온 이 길, 등대는 감질나게 껌벅되었고 생의 바다는 격동으로 어지럽다. 단순하면서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의 수학, 처음과 끝의 뒤틀린 연결로 그래도 진화인지 퇴화인지 이만큼 살았다. 한 해가 간다, 또 한 한해가 꼬리를 물고 따라올 준비를 한다.(주강홍 진주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