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헙이야기> 과학영농을 꿈꾸는 초보농군

최용조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관)

2014-02-24     경남일보
기나긴 겨울 형제님들 잘 지내시는지요?

겨울 농사일은 한가하다지만 주말이라도 바쁘기만 하네요. 새해 다음날부터 매실 가지치기를 하다 매서운 날씨에 창고로 들어와 일을 합니다. 그동안 밀쳐놓았던 땅콩을 까면서, 땅콩 심을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 빠르다며 처와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거지요.

형제님, 겨울의 별미인 서늘한 막걸리 한잔을 기억하시는지요? 막걸리 한잔에 땅콩의 고소함이 온 입에 퍼져도, 물집이 잡히고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을 보고는 미친 짓이라며 헛웃음을 토해냅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땅콩 농사를 지었다는 놈이 막걸리 안주와 군것질용으로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땅콩을 먹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집이 잡혀가며 시간 내어 며칠을 깐 땅콩이 겨우 한두 되 가량인데, 마트에 가니 곱게 볶아 포장한 한 봉지에 만 5000원이 못됩디다. 궁시렁 거리는 나와는 달리 처는 땅콩을 챙기며 졸여서 밑반찬 할 거라며 미소 짓습니다. 아직 까야할 땅콩이 한말이나 있는데 말입니다.

형제님. 이 못생긴 땅콩을 어찌 키웠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밭이 조금 멀어서 차로 제법 가야합니다.

돌이 많은 밭이라 관리기를 고장 내가며 땅을 갈고 튼실한 놈들만 모아 한 해 동안 고이 보관했던 씨를 뿌리고 뙤약볕에 행여나 마를세라 물주고 거름 주고, 뿌리 못 내릴 세라 때맞추어 비닐 걷어 주며 힘써 가꾸었지요.

마지막은 수확의 기쁨이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힘이 듭디다. 어차피 돈이 안 될 거, 조그만 건 버리자, 내일하자, 그만하자, 부부싸움해가며 애써 수확하고, 비 피해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말려서는 좁은 창고에 이 구석 저 구석 어렵게 보관하고, 그대로는 먹지도 팔지도 못하니 방구석에 편하게 앉아서 까 보지만 무릎은 시시로 저려오고 까고 또 까도 줄지 않고 사흘을 까도 두어 되박이더이다. 그리고 땅콩껍질이 이렇게 단단한지 이제야 알겼소.

편히 해 보자고 인터넷도 찾아보았지만, 한두 개 까보고 어찌어찌 까면 편하더라는 이야기는 하지들 마소. 손가락으로 눌러 까니 손끝이 아프고요, 펜치로 눌러 까니 손에 물집이 잡히고요, 덕지덕지 남은 껍질을 떼어내니 손톱 밑이 아려 온다오.

형제님들. 차가운 길거리 앉아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가 이고 온 조그만 물건들도 우리보다 훨씬 더 애써서 힘들게 지은 농작물이니, 볼품없다 작다 마시고 부디 웃으며 팔아 주세요. 돈 안 되는 일들만 골라하는 초보 농사꾼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내손으로 땀 흘려 뭔가를 가꾸어서 생산해 내니 작은 텃밭이라지만 그 또한 즐겁고 행복합니다. 곧 봄꽃, 흙 내음과 함께 햇살 가득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언제나 한자리에 같이 하고픈 형제님들, 지난 이야기로 웃으며 막걸리 한잔 같이 할 그날을 기다리며 부디 평안하소서!

최용조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