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먹어라

이수기 (논설고문)

2014-02-25     경남일보
전통적으로 엿은 단맛이 주는 기쁨으로 웃음이 복을 부르고 만복이 쩍쩍 달라붙어 살림이 늘어난다는 긍정의 의미가 담긴 식품이지만 엿먹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엿먹어라 하면 상대방에게 골탕을 먹으라고 하는 소리다. 인격을 무시한 채 그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은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엿은 여자의 성기를 의미하고, 여자한테 잘못 걸려서 된통 혼 좀 나보라는 의미로 쓰던 그들만의 은어였다 한다. 서양에서 죽은 사람이 입을 벌리고 죽으면 엿을 물려 관에 넣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로 ‘입을 닫아라’, ‘죽어라’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한다.

▶엿은 수많은 음식 중 합격의 상징이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로부터 ‘복’과 ‘기쁨’을 뜻하는 음식이라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를 주고받았을 거라 유추할 수 있다. 옛 생원들의 부인들은 밤을 새워가며 만든 엿을 수십일 동안 허리춤에 차고 한양까지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

▶엿은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꼭 챙겨가는 필수품이었다. 주막집에 모인 유생들이 각자 부인이 고아준 엿을 꺼내 그 빛깔을 견줘 아내를 평가하는 습속도 있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빗대어 “엿을 열섬이나 먹고도 과거에 붙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엿기름에는 빈혈·당뇨 등 성인병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하며, 비타민B, 철분, 엽산 등 30여 가지의 효소와 시금치·우유보다 몇 배나 많은 칼륨과 칼슘이 들어 있다.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엿을 먹인 것은 시험에서 오는 스트레스성 현상을 사전에 예방하는 약의 목적으로 사용했다 한다. 요즈음도 엿을 먹고 엿처럼 철떡 붙으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라 한다.

이수기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