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각 정원수 선생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2014-02-26     경남일보
진양호 남강댐 물문화관 정류장에 차를 세워 놓고 동쪽으로 솟은 산을 오르면 천애절벽 아래에 남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강 건너 들판에는 KBS송신탑이 솟아 있고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하늘 높이 건물 숲을 만들어 낸다. 일곱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칠봉산인데 중간지점 절벽에 암자가 있다.

▶암자에 서면 서북쪽으로 진양호가 눈앞에 다가선다.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새들이 지저귄다. 바위틈으로 샘물이 솟아 약수암이다. 절은 작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심장한 것이 있다. 대웅전 현판이 강건한 필치의 소치(小癡) 글씨다. 혜능의 오도송이 별채의 주련으로 걸려 있다.

▶암자 뒤편으로 철각 정원수 선생의 묘석과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추모시도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제나 말끔히 닦은 당신의 마음자리/샛별인 양 그 동공(瞳孔)/바위와 같은 그 침묵 속에/영롱(玲瓏)히 흐르는 빛/의젓이 짚고선 지팡이 끝에/새겨진 숱한 역정(歷程)마다/고인 사랑의 자국/우러러 품어 보는/당신의 따스한 체온(體溫)/절뚝이는 그 걸음 위로/울려오는 수없는 고동소리/유한한 인생의 값은/당신 때문에 진정 안다/…(하략)’ 조재업의 시다.

▶1960년은 4·19 여파로 온 나라가 학생들 세상이었다. 이 해 6월 초 진고와 진농 학생들 간에 미묘한 대립감정이 일어났다. 낌새를 알아차린 정원수 교감 선생은 지팡이를 짚고 교단에 올라서서 ‘시대는 엄중하다. 학생제군은 자제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끝내 두 학교를 오가며 투석전을 벌여 피를 보고 말았다. 그의 지도력에 휘감겼던 제자로서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묘비 앞에 서서 선생의 영전에 두 손을 모은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