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에 걸려 온 전화 (정일근 시인)

2014-03-10     경남일보
사월에 걸려 온 전화

정일근 시인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 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작품설명=여인의 옷이 가벼워지고 치마기 짧아지는 계절, 기억의 한 꺼풀을 헤집고 벚꽃이 움을 틀 기세다, 새 순처럼 돋아나는 먼 추억에게 한 통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싶다. 왼손잡이 그녀는 아직도 휴화산일까.(주강홍 진주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