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8회)

6장. 3. 비차의 노래

2014-03-26     경남일보
그에 대한 조운의 반응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에 감염된 사람같이 정신없이 이렇게 응했던 것이다.

“그래, 비차! 나는 비차를 날려야 한다고! 그래서 너하고 같이 놀러 갈 시간이 없어!”

일순, 광녀 낯빛이 더없이 복잡했다. 어쩌면 아무 표정도 없다는 말이 더 옳은지도 모른다. 여하튼 광녀는 조운의 말을 또 되뇌었다.

“비차를 날려야, 비차를 날려야…….”

그 기묘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광녀가 홀연 춤꾼처럼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꼭 노래 부르듯 이런 소리를 했던 것이다.

“난다 난다 비, 비차.”

“……!?”

조운은 아찔해진 눈으로 멍하니 광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의 심경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운이야 어떤 마음이든 광녀는 계속해서 같은 동작과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조운은 점점 더 이상야릇한 감정에 휩싸여갔다. 무언가가 자기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느낌, 세상에 태어나서 들었던 그 어떤 소리들보다도 격한 충격으로 내몰리는 느낌, 아직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 그러한 여러 가지 불가해한 감상들이 그의 영혼을 활활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그런 가운데 광녀 저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곳 분지에 산같이 쌓아놓은 비차 재료들도 혼이 나간 듯 멀거니 광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능선으로부터 쉴 새 없이 불어오던 바람도 나뭇가지 끝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아련히 들려오던 동네 닭소리나 개소리도 그 순간에는 딱 멎은 듯했다. 조운이 약간 정신이 돌아온 것은 또 광녀가 그의 팔을 잡아 흔들며 이런 말을 한 때문이었다.

“우리 놀러 가자. 저기 놀러 가자.”

조운은 흐리멍덩한 의식 상태 속에서도 광녀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어디로 놀러 가자고 자꾸 이래?”

그러자 광녀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라니?

“진주에 가자, 진주에 가자.”

조운은 다시 그의 팔을 붙들려고 하는 광녀의 손길을 피하며,

“진주? 여기가 진준데 무슨 소리야?”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던 광녀가 하는 말이,

“성, 성에 놀러 가자.”

“그러면 진주성?”

광녀가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모르겠는 듯,

“그래, 진주성! 진주성에 가보자.”

조운이 냉정하게 내뱉었다.

“가려면 너나 가! 난, 비차를 날려야 해.”

광녀가 또 어깨춤을 더덩실 추면서,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일순, 조운은 또다시 뒤통수를 호되게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방금 광녀가 한 말,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조운은 광녀의 그 말에서 어떤 영적인 계시랄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하는 어떤 힘의 포로가 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