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사

이서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

2014-04-11     경남일보
 
 
 
 
 
 
 
 
 
 
 
 
 

무언가 깊은 생각이 필요할 때면 나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차를 운전해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어딘가로 달리든지,

아니면 훌쩍 산속 절간으로 들어간다.

모르는 곳으로 달리다 만나게 되는 이색 풍경이나 산속 절을 에워싼 자연들은 우선,

세상일에 일희일비하는 나를 잊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풍광과 자연의 치유력은 초라하고 작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내게,

자연과 닮아가라고 메세지를 전달한다.

오늘도, 아직 어둠이 채 털고 일어서지도 않은 시각, 여항산 이슬을 스치며 원효암을 올랐다.

습기 품은 적송의 진한 송진 향을 폐 속 깊이 들이마시며 경내로 들어서자,

때맞춰 고개를 내미는 햇살과 먼저 눈이 마주친다.

햇살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산의 속살 내음에 정신이 아뜩해온다.

자연의 아우라에 지배당한 나는 곧 자연과 하나가 된다.

산 아래 내 삶의 터전이 있는 저 곳,

숱하게 부딪히며 희노애락을 양산케하는 인연들,

산 위에 선 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이 저 곳에서는 우주의 무게로 나를 눌러왔다.

실상 내 세계 안의 문제도 내 몸체에 비례할 만큼의 크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게 슬플 정도로 크고 막막한 부피로 조여 왔다.

자연과 하나 된 내게 내 모습이 들어온다.

그리고 하나 된 산은 나에게 말한다.

멀리 보이는 산 아래 세상의 저 작은 모습처럼,

문제도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그냥 멀리 떨어져 무심한 듯 보라고.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아침을 맞아 분주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풋풋한 청보리가 하루를 준비한다.

그런데, 내가 가져갔던 그 무거운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서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