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호(堂號)-햇귀가스리

전미야 (시인, 소설가)

2014-05-07     경남일보
당호(堂號),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어느 책을 읽으면서였다. 저자는 차(茶)를 좋아해서 한적한 숲에 차 마시는 공간을 마련하고는 당호를 붙였다고 했다. 당시, 나도 그런 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일상의 갈피에 묻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한데 이즈음의 어느 날 불현듯 그것이 떠오르더니 마음을 쑤석쑤석 들쑤시는 것이 아닌가. 거처하는 집이나 방, 혹은 정자에 특정한 뜻을 담아 붙이는 당호.

흔히들 당호라 하면 사임당 같은 선인들의 당호를 떠올리며 고택이나 별장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거주하는 곳은 그런 고풍스러운 집도 아니고 그저 보잘것없는 누옥이지 않는가. 그래도 허름할망정 괜찮은 이름 하나 붙여주면 내 삶의 공간이 밝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덜 떨어진 소녀 같은 취향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꼭 당호라 하지 않더라도 나무판에 글귀 하나 새겨 걸어둔다면 나 스스로 족할 것 같았다.

막상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당호를 무엇으로 하느냐, 이게 문제가 됐다. 하여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서각(書刻)하는 분과 의논을 해가며 한자어보다는 순수한 우리말로 지어보려고 사전 따위들을 들추어가며 끙끙댔지만 생각이란 것은 그저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런데 그게 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어떤 격식이나 틀에 매이지 않고 머리 쥐어짜서 넉 자로 된 당호를 지어 갔더니 여자는 음이라서 양인 홀수여야 하고, 또 재(齋) 당(堂) 방(房) 실(室) 등이 붙어야 하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을 지칭하는 게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참 황당했다. 어느 분이 현판을 붙이려 고민하다가 못 지어 결국에는 빈 현판만 걸었다던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또 몇 날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도무지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하다하다 안 돼 그만두자 싶었다. 하지만 그만두자 해도 생각은 쉽게 떠나지 않았고, 만나게 되는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며 하나 지어 주십사,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여러 이름들이 들어오게 됐는데, 그 중에서 내 마음을 기울어지게 한 것은 ‘햇귀가스리’였다. 햇귀는 순 우리말로 ‘아침에 뜨는 해의 빛, 즉 첫 햇살’이란 뜻이고, 가스리는 ‘푸른 숲’의 고어(古語)라 했다. 그러니까 동쪽 하늘로 막 떠오르는 생명의 신비가 가득 담긴 해의 첫 빛이 푸른 숲을 비춘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결 고운 느티나무 판자에 그것을 양각(陽刻)으로 새겨 걸어놓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면 그걸 올려다보며 그 뜻을 마음에 다지곤 한다.

각박한 세상, 자신을 추스르며 살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굳이 당호가 아니라도 좋다. 마음에 드는 글귀 하나 새겨 걸어두고 자신을 다스려봄은 어떻겠는가.

전미야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