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느냐, 이별을 준비하라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2014-05-09     경남일보
디카시
그래, 혼자일 때가 온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사랑했던 일은

바깥에 두고 온 시간을 버린 일이다.

문득 늙은 시간을 찾아 나선다.



-황영자 <사랑하느냐, 이별을 준비하라>



생의 마지막에 닿은 아내의 손을 잡고 남산에 있는 소월 시비를 찾은 한 시인이 있었다. 시인은 그 길에 대해 “이것이 이세상 당신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쓸쓸히 당신의 손을 잡아 손가락으로 한 소절씩 쉬어 짚으며 저만큼 하고 읽어 갔지”(『저만큼』)라고 썼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이 우수수 아내의 몸을 빠져 나가는 걸 넋놓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날들. 그렇게 자고 나면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접시꽃 당신』)라고 안도하던 날들 때문에 그의 시행들이 한동안 아프게 읽히던 때가 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혼자일 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늙은 시간을 찾아”가는 그 길 위에 ‘혼자’인 것은 점점 자신 없어지는 일임에 분명하다.

/차민기·창신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