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이 설 때 (송진권 시인)

2014-05-26     경남일보
주걱이 설 때(송진권 시인)

처음엔 싸게 불을 피우면서
눌어붙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줘야 햐

눌커나 타면 화근내가 나서 못 먹어

계속 천천히 저어줘야 햐

딴전 피거나 해찰부리면 금세 눌어붙어 못 써

뒷간엘 가도 안 되고 잠시잠깐 자리를 떠도 안 되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여

땀이 쏟아져도 젓는 걸 그만두면 안 되야

오직하면 이게 땀으로 만든 거라고 안 햐

시방이야 가스불로 하니께 편해졌지만

예전에는 혼자 불 때랴 저으랴 아주 대간했지

내굽기는 또 왜 그리 내군지

눈물콧물 쏙 뺐어

되직하니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뭉근하게 불을 죽이고 뜸을 들이는 겨

그래 다 되었다 싶을 때

주걱을 세우면

주걱이 바로 서는 거여

그럼 도토리묵이 다 쑤어진 거여



▲작품설명: 주걱하나가 제대로 설쯤에야 도토리묵이 완성된다, 불심과 온도의 조화 속에서 그 과정의 완성과 결과의분주함, 녹녹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탄탄히 생장하고 응고되는 체험적 삶을 처절히 대입하고 있다, 여백 속에 숨겨진 시의 의미, 어디 주걱뿐이겠는가.(주강홍 진주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