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2회)

9장. 3. 솜털 날리는 여자

2014-05-29     경남일보
‘내가 광녀 도원이같이 미쳤다.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왜놈들 조총이 어떤 것인데, 이런 천벌을 받을 생각을……?’

고을 중앙통이 가까워질수록 사람과 우마차 등이 많이 나타났다. 굵은 철사로 둥글게 만든 굴렁쇠를 굴려가며 노는 철부지 아이들도 있었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하나같이 난리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없이 걸어가면서도 연방 이곳저곳으로 눈을 돌렸다. 언제 갑자기 왜구가 그곳까지 쳐들어올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살벌한 공기가 온 고을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자, 다 왔습니다. 보묵 스님 말에 술명은 정신이 들었다. 비차로 변한 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 비차가 날아간 걸까? 정말이지 다시는 추락하면 안 되는데 어떡하나?

술명은 객줏집을 달리 보게 되었다. 여각이라고도 하는 객줏집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인구가 불어나고 상업이 갈수록 힘을 씀에 따라, 객줏집 또한 봄비에 쑥부쟁이 돋아나듯 무섭게 성장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 끝에, 장사 경험도 없고 농사일에도 서툴고 관직에 나아갈 신분도 못 되고, 단지 하고 있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는 수레’ 만드는 게 유일한 조운을 떠올리니 술명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였다. 만약 영원히 비차를 만들지 못한다면 조운의 인생은 영원한 실패작으로 전락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아아, 새의 운수로 태어날 운명이었다면 사람이 아니고 차라리 완전히 새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술명이 거기 문간에서 맞닥뜨린 사내는 그러잖아도 위축된 그의 가슴을 한층 졸아붙게 했다. 양반집 수청방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는 청지기를 연상케 하는 그 사내는 인상부터가 사람을 위압했다. 턱과 이마는 툭 불거져 나오고 코 부근은 움푹 들어간 얼굴이 험상궂기 그지없었다.

‘객줏집 칼도마 같다고 하더니, 객줏집 사내라서 그런 것인가? 진짜 무섭게도 생겼네. 악랄한 왜놈들도 보면 덜덜 떨겠다.’

아직은 건장하고 기운도 센 술명이지만 주눅부터 들었다. 조운이 상돌이란 백정과 함께 충청도 노성에 살고 있는 윤달규라는 사람을 찾아가던 길에 만났다는 산적 두목도 어쩌면 저렇게 생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차라는 이름과 비차의 배를 두드리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던 윤달규도 그렇지만, 목숨을 살려준 정백이라는 그 산적 두목도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객줏집 사내는 생김새와는 달리 퍽 온순하고 친절했다. 보묵 스님과는 구면인 듯 사내는 아주 공손히 그들을 맞았다. 그곳에는 방이 많았는데, 보묵 스님은 술명을 그중 한 방에 있게 하고는, 자신은 그 옆방으로 들어갔다. 술명은 이유도 모른 채 혼자 방안에 앉아 기다렸다. 웬일인지 보묵 스님은 술명에게 어떤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

방밖에서는 계속해서 떠들썩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난리 중에도 생업은 멈출 수 없는 법이긴 했다. 하지만 언제 갑자기 병사가 되어 왜군과 싸워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왜적의 포로가 되어 같은 동포를 향해 총탄을 날려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 시대는 모든 게 불투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