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언제였습니까?

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2014-06-13     경남일보
고혹의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케 하는 장미가 요요하게 시선을 붙잡는다. 이슬 머금은 장미가 생경스럽도록 붉다. 조카에게 물었다. “너에게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은 언제였니?” 무슨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그런 게 어딨어. 그런 거 없어, 이모.” 시큰둥한 대답이다.

그들의 연애담은 주위에서 화젯거리였다. 연애시절 캐릭터가 만화 영심이와 경태였기 때문이다. 조카사위에게 해야 할 질문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설레는 마음이 없었다는 거니?” 피식 웃으며 조카가 말했다. “설레는 게 뭔데?” 다시 물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이해는 하니?”.“글쎄~ 어린 시절이 그립긴 하~징.”

조카의 맥 빠진 대답으로 나는 화양연화에 대해 다시 골똘해졌다. 지독한 짝사랑이거나 가슴 저미는 슬픈 사랑, 또는 평행선상의 불륜이 화양연화로 각인되는 건 아닐지. 남자들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환상을 갖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전 인생을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화양연화의 시절이라고 한다면 해피엔딩의 사랑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화양연화’가 될 공산이 크다. 내가 화양연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왕가위 감독, 양조위·장만옥이 출연한 ‘화양연화’를 보고부터다. 부희령의 소설, ‘화양’도 불륜을 다룬 이야기다.

대한민국 중년의 사내라면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를 한번 쯤 내지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청춘을 돌려달라는 절규 속에는 청춘과 사랑을 되돌려달라는 절절함이 담겨 있다. 인생 몇 굽이를 돌아 산중턱에 다다르고 보니 푸릇한 젊은 시절이 그립고 못다한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아련한 옛사랑은 가슴속에서 슬몃슬몃 고개를 쳐든다. 헛헛한 가슴 달랠 길이 없어 애꿎은 노래방 마이크를 붙들고 핏대 올려 용을 써대는 것이다.

인생 백세 시대를 사는 우리다. 이제는 ‘야~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이런 노래로 대리만족이라도 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살 일이다. 잊을 수 없는 아쉬운 사랑,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처럼 가슴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랑, 이런 사랑을 더 이상 신주단지 모시듯 하지 말자.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후회 없이 사랑하자. 세월은 빛의 속도로 스치고 지나가므로.

이 땅의 부부들이여, 오늘밤 그대의 남편 또는 아내가 ‘당신의 인생에서 화양연화의 시절은 언제였어?’ 하고 은근하게 혹은 집요하게 물어 올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미리 대비하자. 왜?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나의 화양연화를 위하여. 그리고 생경스럽도록 처연한 붉은 장미를 위하여.

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