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77회)

12장 3. 신종(神鐘)은 울리고

2014-07-31     경남일보
한편, 여기는 성곽에 올라 바라보면 지리산 천왕봉이 가물거리는 북쪽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가마못 안쪽 동네.

조운과 둘님 그리고 양가 부모들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물론 김제 사람 정평구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짓말 같지만, 왜군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물론 그전에는 먼발치에서 보았었다. 그것은 저들이 그 고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였다. 당시 미리 비상연락을 받고 모두가 비봉산 뒤편으로 피신한 덕분에 큰 변고는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옥이 파괴되고 세간살이를 약탈당하는 등 피해는 입었지만 그래도 사람은무사했으니 천행이었다. 또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동네 뒤쪽 분지에 숨겨놓은 미완성의 비차를 왜군들이 발견하지 못해 온전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나중에는 또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그랬다. 아마도 왜군은 그때쯤 그 고을 백성들은 모조리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그렇기는 했다. 그곳 가마못 안쪽 마을에서 그들 두 집안 외에 피난을 가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것도 특별한 집이었다. 조운이 알기에는, 문둥이 부부 집안, 운신도 못 하고 노망까지 든 노파를 거의 가둬놓듯이 하고 있는 집안, 그 두 집안뿐이었다. 심지어 광녀 도원과 그녀의 어머니, 오빠도 어디론가로 떠나고 없었다. 그리하여 그 몇 안 되는 집들을 빼고는 모두 유령이 사는 집 같았다. 하긴 사람이 남아 있어도 폐가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밤이 가마못같이 깊었다. 조운은 정평구가 잠들어 있는 아래채를 보며 나도 이제 눈을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도 둘이 점심도 거른 채 비차에 달라붙었다. 모두가 왜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비차를 만들다 죽을 각오가 돼 있었다. 작업에 몰두할 때만 자신들이 전쟁에 나아가지 않은 비겁한 피신자라는 자괴감을 떨칠 수가 있었다. 유일한 핑계거리(?)가 비차였다.

그만 주무세요. 광녀가 보이지 않은 후부터 안정을 많이 되찾은 둘님이 어두운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주며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밤에도 등잔불을 밝히지 않고 지내는 그들이었다. 밤에는 작은 불빛 하나가 천리 밖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당신도 피곤할 텐데 같이 잡시다. 우리 애기도 잠을 자야지.”

베개에 힘겹게 머리를 내려놓으며 조운이 말했다. 부부는 나란히 누웠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간담을 졸이고 몸을 혹사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찾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왜 이런 모습들이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다고 보나요?”

어쩌다가 드물게 나누는 부부 대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그 해답을 채워 나갈 수 없었다. 요즘은 낮이고 밤이고 모든 게 늘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사실 전쟁터를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굳게 믿었다. 그것은 비차를 꼭 이루어내라는 하늘과 부처의 엄명과 비호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그렇지만 또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들 목숨과 그 비차를 맞바꾸어야 할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