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83회)

13장. 1. 추진장치를 달아라

2014-08-08     경남일보
“제가 너무나 불민한 탓에 아직도…….”

조운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돌 같은 이 머리통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거라고 설쳐대고 있는지.

“너무 그렇게 혼란스러워하지 마시오, 강형.”

그렇게 말하고 난 정평구가 이번에 눈길을 돌린 곳은 일찍 깬 새 한 마리가 막 날아오르고 있는 동편 능선 쪽이었다.

“아무래도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일 게요. 그렇다면…….”

정평구는 그 멧새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연구한다는 그 기인 말에 의하면, 지금 저렇게 날개를 펴고 활공(滑空)하는 새는, 그 체중을 받치고 있는 힘을 공기로부터 받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정평구는 입을 다물고 잠시 기억을 더듬는 눈치였다. 산 속에서 천문을 연구한다는 그 기인에게서 들었던 말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듯했다.

“날개는 양력을 만드는 중요한 구실도 하지만, 동시에 큰 저항이 되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그도 더는 자신이 없는지,

“또 뭐가 있더라? 들을 때는 좀 알 것 같았는데…….”

조운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평구가 만난 그 기인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출중한 자라고 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일까지도 정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가 혹시 하늘을 날 수 있는 비결에 관해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정평구 저분이 억지로 물어보았을 것이고, 그러니 그 기인 역시 자신 있는 답변은 해주었을 리가 없을 것이니…….’

그때 정평구가 계속 명확하지도 않은 그런 얘기만 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양력이 중력보다 세면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그런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조운은 힘이 났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운은 정평구가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저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벌써 이 일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조운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뭇가지에 목을 맨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자신의 시체, 남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자신의 시체, 미완성의 비차에 올라타고 불을 질러 비차와 함께 까맣게 타들어간 자신의 시체, 그런 모습들이 눈에 선명히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명의 은인들이 참으로 많구나!’

그랬다. 정평구뿐만 아니라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나타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서게 한 광녀 도원도 있다. 둘님도 마찬가지고 부모님과 동생들도 그렇다. 산적 소굴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백정 상돌도 빠뜨릴 수 없고, 그리고 김시민 목사. 나 조운은 위기에 빠진 조선을 건질 귀인을 구하라는 하늘과 부처의 계시를 받은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