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물의 사리

2014-09-26     경남일보
9.25디카시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물의 사리

 

 

물의 사리 -이기영

양산 사명암에서 목이 말랐네
마당에는 돌확을 가득 채운 옥수가 흘러 넘치고 있었네
물 한 바가지로 목 축이려다
수정 방울 동동 떴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네
아, 물에도 사리가 있다는 걸 알았네



예로부터 고승들이 입적할 때 나오는 사리의 많고 적음은 수행의 정도에 비례한다 여겨 불가에서는 신성시했다. 그러나 불가의 다른 편에서는 사리를 단순히 뼛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며 과학적인 성분 분석을 근거로 그 의미를 폄하하기도 한다. 사실이 어떠하든 우리 삶에서 기적이 행해지고 신기한 일들이 많이 목격되는 것은 살 만한 일이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는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의 근원적 고독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공포심을 달래기 위한 관념적 창조물이었으니 그 사실 여부를 가리려는 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마찬가지로 이 시에 포착된 물방울의 표면장력이 어떻고, 물분자 간의 질량과 그 반발력의 상관관계가 어떻고 하는 과학적 분석은 불필요하다. 이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자연물에서 포착된 대상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과정에 사리처럼 남은 시인의 상상만 눈부실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