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6회)

16장 1. 추락 후에 오는 것

2014-10-14     경남일보
두 번째 시험비행의 시간이 왔다. 이날은 지난번보다 더 이른 오전 나절에 집을 나와 분지로 갔다.

공터를 비추는 햇볕은 어떤 비밀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비차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가마니때기나 검은 비닐로 가리고 나뭇가지와 잎, 짚 등으로 덮어 무슨 거름더미처럼 위장해 놓았기 때문에 쉬 발각될 염려가 없었다. 특히 지금은 난리 중인데다가 거기는 평소에도 사람들 내왕이 극히 드문 곳이어서 무엇을 숨겨두기에는 무척 좋았다.

“혹시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으셨는지……?”

“그래도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보니…….”

조심스러운 안부 인사부터 오갔다. 이번에는 네 사람이었다.

“우리 강형만큼이나 내 마음에 쏙 드는구먼.”

정평구는 맞잡은 상돌의 손을 힘껏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식이 없는 모습은 조운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했다.

“아닙니다. 저를 조운 형님과 비교하시다니요?”

소 눈을 닮은 상돌의 눈에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소를 죽이면서 소를 닮아가는 백정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내가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니고, 그럼 지금부터…….”

상돌을 만나본 정평구는 당장 같이 해보자고 했다. 애써 느긋한 표정을 짓긴 해도 분, 초를 다투는 급박한 때였다.

“아, 제가 어찌 이런 복을……!”

상돌도 자기 같은 미천한 몸이 그런 귀한 것을 타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며 다시없을 영광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비차의 위험한 시험비행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산적 소굴에서 보였던 그의 대범함을 떠올리면 조운은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문제는 둘님이다. 하지만 잘 해낼 거야.’

조운은 홑몸이 아닌 아내가 걱정이 되었지만, 어릴 적부터 시간만 나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던 그녀였기에 거뜬히 뒤따랐다. 하지만 비차 시험비행이 워낙 중요한 일인지라 내색은 하지 않아도 태아가 걱정이 된 둘님은 혼자서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해산달을 헤아려보는 중이었다. 내년 1월 말에서 2월 초순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아, 세상에 이런 것이……?”

상돌은 대나무 골격과 무명천 날개를 달고 소나무 바퀴에 의해 잘도 굴러가는 비차가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모양이었다. 크게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눈은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난 소의 그것 같았다. 하긴 어느 누구라도 처음 비차를 본 사람이면 다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어쩌면 왕이 타는 수레보다도 더 훌륭한 수레였다.

“저는 고니인 줄 알았지 뭡니까?”

둘님은 비차를 보고 따오기 같다고 했는데, 상돌은 고니 같다고 했다. 두 사람 말이 모두 그럴싸했다. 광녀는 무엇이라고 할까. 얼핏 조운의 머릿속을 스친 황당하고 위험한 생각이었다.

‘내가 또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마다 떠오르는 광녀를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으니…….’